한의사의 현대 의료기기 사용을 인정하는 판결이 잇따르던 차에 엑스레이(X-ray) 방식의 골밀도측정기를 이용해 환자를 진료한 한의사가 2심에서도 무죄 선고를 받았다. 한의사들은 당연한 결정이라며 환영했지만 의사들은 국민의 생명과 건강을 위협할 것이라며 강력히 반발하고 있어 양한방의 갈등이 깊어질 것으로 보인다.
17일 의료계에 따르면 수원지방법원은 이날 엑스레이 방식의 골밀도측정기를 환자 진료에 사용해 벌금 200만 원의 약식명령을 받은 한의사 김모 씨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해당 사건은 김씨가 지난 2006년부터 2018년까지 저선량 휴대용 엑스레이 골밀도측정기를 진료 목적으로 사용해 의료법 위반 혐의로 벌금형의 약식명령을 받자 정식재판을 청구한 것이 발단이다. 수원지법 형사14단독 이지연 판사는 지난 2023년 9월 치러진 1심에서 김씨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2심에서도 사법부가 한의사의 손을 들어준 것이다.
현대 의료기기 사용 등을 둘러싼 양한방 의료계의 갈등은 어제오늘 일은 아니다. 의료법에는 "의사는 의료, 한의사는 한방 의료"를 임무로 하고 의료인은 "면허된 것 이외의 의료행위를 할 수 없다"고 돼 있다. 자기공명영상(MRI)이나 컴퓨터단층촬영(CT) 등은 '진단용 방사선 발생장치의 안전관리에 관한 규칙' 등에 따라 한의사 사용 제한이 명시돼 있지만, 그밖에는 대체로 양측의 영역이 구체적으로 적시돼 있지 않다보니 직역간 갈등이 반복됐다.
최근 몇년째 추이를 보면 초음파, 뇌파계 등 현대 의료기기 사용 전반에서 한의사들에게 힘이 실리는 분위기다.
앞서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작년 2022년 12월 한의사가 초음파 진단기기를 진료에 사용해도 의료법 위반죄로 처벌할 수 없다고 판결했다. 한의사가 진단 보조 수단으로 초음파 진단기기를 사용하는 것이 보건위생에 위해를 발생시킨다고 단정하기 어렵다는 게 당시 대법원이 제시한 판단의 근거였다. 2023년 8월에는 한의사의 뇌파계 진단이 합법이라는 대법원의 판결이 나왔다.
한의사들의 현대 의료기기 사용을 사실상 허용한 대법원 판결이 잇따라 내려지자 한의계는 고무됐다. 1심에 이어 X-ray 방식의 의료기기 사용에 대한 법적 근거가 또 다시 재확인됐다는 점에서 의의가 크다는 반응이다.
대한한의사협회(한의협)는 이날 판결 직후 입장문을 내고 "초음파와 뇌파계에 이어 X-ray 방식의 진단기기까지 잇단 승소로 한의사 의료기기 사용이 가속화될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급속도로 발전하는 의료기술에 대한 국민들의 인식변화와 요구도를 반영해 치료에 적극 활용하고 이를 통해 최상의 의료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은 의료인의 당연한 책무"라며 "의료법상 자격을 갖춘 한의사가 의료기기를 자유롭게 활용해 진료할 수 있도록 법과 제도 역시 변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사법부의 준엄하고 정의로운 판결이 나온 만큼 국회와 정부는 특정직역 눈치보기에서 벗어나 국민의 진료 편의성 증진 차원에서 하루 빨리 미비한 법적 조치와 제도개선에 나서야 할 것"이라고 촉구했다.
반면 대한의사협회(의협)는 "현행 의료법이 규정하는 의료인의 자격과 역할을 충분히 고려하지 못한 판결"이라며 반발하고 나섰다. 엑스레이 방식의 골밀도측정기는 의료법에 따라 별도 규정된 ‘진단용 방사선 발생장치의 안전관리에 관한 규칙’에 의해 관리되는 의료기기로 인체에 미치는 위해도 분류상 3등급(중등도의 잠재적 위해성을 가진 의료기기)에 해당하는 만큼 전문적인 지식과 임상수련이 필요하기 때문에 한의사가 사용해서는 안된다는 게 이들의 논리다.
의협은 "그간 의협을 비롯한 의료계는 한의사의 인체의 해부학적 지식과 과학을 근간으로 발전한 현대의학 및 방사선 의료기기에 대한 전문식견이 충분하지 않다는 사실을 반복적으로 지적했음에도 불구하고 재판부는 이를 간과한 판결을 내렸다"며 강한 유감을 표했다. 그러면서 "한의계는 이번 판결이 마치 (한의사의 의료기기 사용에 대해) 전면적인 허용인 것처럼 사실을 호도하고 있다"며 "골밀도 측정과 영상진단을 내린 게 아니라는 주장에 대해 죄를 묻기 어려워 내린 판결일 뿐, 한의사의 엑스레이 사용을 전면허용한 것이 아니라"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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