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마다 연말연시에는 새해 경제를 가늠해본다. 희망으로 가슴이 따뜻해져 부풀어 오르기도 하고 암울한 전망에 잔뜩 움츠리기도 한다. 안타깝게도 을사년 새해 우리 경제에는 먹구름이 잔뜩 끼어있다.
먼저 2025년 글로벌 경제를 보면 미국 트럼프의 새 행정부가 휘두를 ’미국우선‘ 경제정책이 가장 큰 리스크라는 데 이견이 없다. 관세율 인상 등 보호무역이 국가간 거래를 위축시켜 세계 교역이 부진해지고 자원 이용의 비효율성이 확대될 것이다. 수출이 매우 중요한 개방경제인 우리나라의 성장에는 큰 장애물이 아닐 수 없다. 세계 국내총생산(GDP)의 1/4을 담담하고 우리의 최대 교역국인 미국뿐만 아니라 유럽, 중국, 동남아 등 다른 나라의 생산에도 부정적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다음으로 지난해 과일 등 농산물 가격의 급등으로 절감했고 앞으로도 오랫동안 경제에 막대한 영향을 미칠 기후위기(climate crisis)이다. 평균기온 상승과 이에 따른 극단적인 일기는 지구촌 곳곳을 할퀴어 커다란 인적, 물적 피해를 초래하고 있다. 평균기온이 3℃ 상승하면 지구 생물의 절반이 멸종된다고 한다. 기후변화를 늦춰 경제가 지속가능하도록 삶의 태도와 생산방식의 변화가 필요하다. 탄소배출 넷제로(net zero) 등 에너지 생산과 사용을 송두리째 바꾸는 기업 생산활동의 전환을 요구하고 있다. 우리 경제에 위기이자 기회일 수도 있다.
또한 2022년 2월에 발발한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이 3년 동안 이어지고 있고 이스라엘과 하마스의 전쟁 등 중동지역의 불확실성도 해소되지 않고 있다. 나아가 세계 GDP의 거의 절반을 차지하는 미국과 중국의 끊임없는 대립, 살얼음의 남북한의 긴장도 현재 진행형이다. 이러한 지정학적 리스크는 불확실성을 키워 소비, 투자 등 경제 행위를 위축시킨다.
그러나 지구촌 경제에 긍정적인 요인이 없지는 않다. 지난해 물가상승률이 목표치에 근접하면서 중앙은행들은 통화정책을 긴축 완화로 선회하였다. 미국, 유럽중앙은행(ECB)이 5% 내외이던 기준금리를 1%포인트 이상 인하하였고 이외 대부분의 중앙은행들도 기준금리 인하에 동참하였다. 금년에도 추가 인하가 예상된다. 금리인하는 소비, 투자가 늘어나는 데 기여하는 등 다양한 경로를 통해 성장을 자극할 것이다.
그리고 2022년말 공개된 챗GPT는 인공지능(AI)이 지구촌의 새로운 먹거리가 될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 70여년전 시작된 AI라는 아이디어가 반도체 등 기술 발달로 성큼 실용화된 것이다. 구글, 아마존, 메타, 네이버는 물론 대부분의 지구촌 IT 기업들이 기술 경쟁을 하고 있다. AI를 채용한 기업들은 노동생산성의 향상을 증명하고 있다. 20세기 이래 자동차, 생활가전, PC와 스마트폰이 우리의 삶을 크게 변화시키고 새로운 수요를 창출하여 경제성장을 이끌었던 경험이 있다. 전문가들은 AI를 향후 인류의 삶에 본질적인 변화를 가져올 또 하나의 새로운 도구로 바라보고 있다.
국내를 보면 지속되고 있는 가계부채, 고령화 등의 문제가 여전히 도전을 요구하고 있다. 2000조원에 달해 GDP에 버금가는 수준인 가계부채가 우리 경제에 부담이 아닐 수 없다. 적절한 부채는 새로운 도전이 가능하게 하는 등 긍정적인 측면이 없지 않다. 하지만 감내할 수 없게 되면 소비 위축, 금융 불안 등으로 국민경제를 위축시키는 칼날이 된다. 우리 경제의 장점이었던 역동성을 저해하는 또 하나의 장애물이 인구 고령화이다. 2024년에 65세 이상 인구가 20%를 넘는 초고령화 사회로 진입하였고 한다. 너무 빠른 인구구조 변화로 나이듦의 부담이 장수의 긍정성을 넘어서고 있다. 고령화는 경제발전에 따른 둔화 정도를 넘어서는 잠재성장률 하락의 최대 요인이다.
국가별로는 미국 경제가 보호무역, 신산업정책 등으로 호조를 이어가고 있다. 관세율 인상에 따른 물가상승과 GDP의 70%를 차지하는 민간소비의 제약에 의문점이 없지는 않지만 당분간 2%를 넘나드는 성장세를 보일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일본도 오랜 침체에서 벗어나는 모습을 보이고, 글로벌 공급망 재편의 혜택으로 인도와 베트남 등 동남아 국가들의 견조한 성장세도 전망되고 있다. 다만, 미국 다음으로 큰 시장인 중국 경제는 부동산시장과 내수 침체 등으로 성장세 둔화가 이어지고, 유럽경제도 제조업 부진 등으로 준수한 성장세를 기대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이러한 대내외여건에 더해 우리 경제는 극도의 정치적 불안정성에 휩싸여 있다. 국민의 삶이 안중에 없는 후안무치의 정치가 큰 걸림돌이 되고 있다. ’오징어게임‘을 보는 듯하다. 전문가들은 올해 경제성장률이 1%대에 불과할 것이라고 걱정하고 있다. 심리가 극도로 위축되고 불확실성이 커서 소비, 투자 등 내수가 한 걸음을 내딛기가 쉽지 않다는 것이다. 서민경제는 코로나의 충격에서 채 벗어나기도 전에 커다란 난제에 부딪힌 형국이다. 성장의 한축인 수출은 2023년 10월부터 성장을 이끌었으나 금년에는 앞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녹록지 않은 상황이다. 증가세를 이어가겠지만 성장을 주도하기는 쉽지 않다는 것이다. 그러나 원유가격 안정 등으로 수입이 둔화하면서 경상수지는 호조를 지속하고 물가도 안정세를 나타낼 것이다. 한편, 경제의 선순환을 위해 중요한 고용은 투자 부진 등으로 양적으로나 질적으로 개선되기는 어려울 것으로 판단된다.
이와 같은 상황은 모든 경제 주체에게 긴장과 지혜를 요구하고 있다. 을사년 올해는 지혜와 변화를 상징하는 푸른 뱀의 해라고 한다. 우리 국민은 ’함께‘하여 국난을 극복한 소중한 경험을 많이 가지고 있다. 이럴 때일수록 과감한 구조개혁이 필요하지만 낙오자를 많이 만들기보다 가능하면 변화에 같이 가도록 하는 것이 좋다. 단순한 성장보다는 지속가능한 방향으로 나아가는 것이 바람직하다. 정부는 국제질서의 변화에 집중하여 국익 우선에 최선을 다해야 할 것이다. 대기업은 변화에 부응한 과감한 투자가 필요하며 중소기업과 상생하는 체제를 구축해야 한다. 황금알을 낳는 거위의 배를 가르는 우를 범하지 말아야 한다. 가계가 과도하게 소비행위를 줄이는 것도 바람직하지 않다. 수요가 위축되면 기업이나 자영업자도 어려워지고 악순환의 고리로 들어가게 된다. 부동산시장에 불어닥친 거대한 탐욕도 거두어들일 필요가 있다. 섶을 지고 불구덩이로 들어가는 사례를 이미 보지 않았던가. 탐욕보다는 주변을 살피는 미덕이 요구되고 있다.
지난해 11월 무거운 눈이 기록적으로 내렸다. 나무들이 많이 넘어지고 상처를 입었다. 잎이 남아있던 상록수종을 제외하면 지나치게 키만 크거나 홀로 서 있는 나무들의 피해가 훨씬 컸다. 지구상에서 가장 키가 큰 나무인 미국삼나무(redwood)는 얕은 뿌리임에도 수천 년 동안 100미터 넘게 자랄 수 있었던 것은 이웃과 뿌리를 서로 연결한 연대로 알려져 있다. 나무들은 엄청난 경쟁을 하지만 서로 타협하고 양보하면서 건강한 숲을 이룬다. 경제도 성장에만 몰두하면 충격에 약할 수밖에 없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경제도 복원력(resilience)이 중시되고 있으며, 지난해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들은 우리나라의 경제발전 요인으로 민주화 등 제도적 성숙을 주목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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