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체코 두코바니 신규 원전 수주를 두고 지적재산권 침해라는 입장을 보였던 미국 웨스팅하우스가 한국수력원자력과의 분쟁을 종결하기로 했다. 송사를 끌고가는 것보다 한국과 협력해 해외시장에 공동 진출하는 것이 이익이라고 판단한 결과다. 한국으로서는 해외 원전 수주에 가장 큰 걸림돌이 해소됐다는 평가가 나온다. 원전 수출 역량이 확대된 만큼 국가 에너지 정책의 근간인 전력수급기본계획도 신규 원전 4기 건립으로 원상 복구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이 제기된다.
한국전력과 한수원은 17일 “미국 웨스팅하우스와 지적재산권 분쟁을 종결하기로 합의했다”고 밝혔다. 웨스팅하우스 역시 “양측이 전 세계적으로 신규 원전 프로젝트를 추진하기 위해 협력할 무대를 마련한다”는 내용의 입장문을 발표했다. 다만 양측은 이번 지재권 협상 타결 내용의 구체적인 내용은 상호 비밀 유지 약속에 따라 공개하지 않기로 했다.
업계 안팎에서는 한수원이 체코 원전 수출과 관련해 웨스팅하우스에 로열티 혹은 일감을 주고 향후 다른 제3국 원전 수출도 공동 추진하는 협상안을 내놓은 것으로 보고 있다. 웨스팅하우스의 전통 시장인 유럽에서는 양 사 공동 진출, 중동 지역 등은 한국이 단독 진출하는 등 특정 지역 원전 수출 문제를 놓고 ‘상호 조정’을 이뤘을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황주호 한수원 사장은 “이번 합의로 양측이 전략적 관계를 형성했다”며 “협력 체계를 강화해 글로벌 원전 시장에서 경쟁력을 강화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김동철 한전 사장도 “지난 50년간 이어온 양측의 전통적 협력 관계가 복원됐다”고 평가했다. 안덕근 산업통상자원부 장관 역시 “한미 정부와 민간이 글로벌 원전 시장에서 호혜적으로 협력해나갈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한 것으로 평가한다”고 반겼다.
원전 업계는 한미가 ‘팀 코러스(Team Korea+US)’ 형태의 진출을 꾀하면서 세계 각지의 수주전에서 유리한 고지를 점할 것으로 평가한다. 당장 웨스팅하우스가 어깃장을 놨던 24조 원 규모의 체코 두코바니 원전은 무리없이 최종 계약서에 서명할 것으로 보인다. 사업자를 선정하고 있는 영국·이집트·폴란드 등에서도 수주 가능성이 높아졌다는 평가다. 김성중 한양대 원자력공학과 교수는 “한미를 제외하고 해외 원전 수출이 가능한 국가는 사실상 중국과 러시아 뿐”이라며 “중러에 에너지 시설을 맡기기 부담되는 국가들을 노릴 수 있는 의미 있는 합의가 나왔다”고 평가했다.
실제로 세계원자력협회(WNA)에 따르면 전 세계에서 계획이 수립됐거나 추진 중인 원전 건설 프로젝트는 430개에 달한다. 자체 제작 기술을 가진 중국(194기)과 러시아(50기)를 제외해도 186개의 원전 건설이 논의되고 있다. 한미가 함께 진출하기로 한 유럽에서는 러시아를 제외해도 폴란드(29기)·우크라이나(9기)·프랑스(6기)·루마니아(8기) 등 총 70기가 추진되고 있다. 우크라이나 침략으로 러시아에 대한 유럽 국가들의 전략적 경계심이 높아졌다는 점을 고려하면 이들 국가의 선택지가 상당히 좁아질 수밖에 없다는 분석이 나온다.
한국이 독자적인 활동 공간을 확보한 것으로 알려진 중동에서는 터키(8기), 사우디아라비아(2기) 등 총 20기 신설이 검토되고 있다. 이외에도 인도(40기)나 브라질(8기), 멕시코(11기) 등 성장세가 두드러지는 개발도상국들도 신규 원전 건설에 눈독을 들이고 있다. 아프리카에서도 남아프리카공화국(2기), 가나(1기) 등이 원전 건설 논의에 착수했다. 아프리카에는 앞으로 산업이 빠르게 발전하고 인구가 급증할 가능성이 높은 나라가 많아 차세대 시장이 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원전 업계는 원전 수출의 르네상스를 맞이한 만큼 11차 전력수급기본계획을 원안대로 복구해 빨리 국회 논의를 끝내야 한다고 지적한다. 더불어민주당 등 야권은 에너지믹스 정책을 다룬 11차 전기본과 관련해 원전 축소를 주장했고 정부는 이에 당초 건립을 추진하던 신규 원전을 4기에서 3기로 줄인 수정안을 내놓은 바 있다. 이기복 한국원자력학회 회장은 “팀 코러스 결성으로 글로벌 원전 수주 기회가 확대됐다”며 “11차 전기본 원안대로 국내 신규 원전 4기 건립을 추진해 수출 동력으로 삼아야 한다”고 언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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