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시즌 마지막 대회에서 임희정(25·두산건설)은 퍼트 연습에 빠져있었다. 티잉 구역에서 대기하며 앞 조 선수들이 페어웨이를 비워주기를 기다리는 동안 다들 드라이버로 빈 스윙을 하고 있었는데 임희정은 돌아서서 퍼트 연습만 했다. 퍼트가 그만큼 안 됐기 때문이겠지만 적어도 샷은 자신 있다는 뜻으로도 읽혔다.
최근 만난 임희정은 “새 시즌을 준비하는 의미이기도 했다”고 설명했다. “이전의 느낌으로는 퍼트가 더 이상 안 된다고 정리를 했고 새로운 감을 계속 찾고 있던 상황이었어요. 반복을 통해 그 느낌을 몸에 익히려고 했죠. 최종전이었으니까 다음 시즌을 준비하는 마음도 있었고요.”
‘사막여우’ 별명으로 유명한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 투어 임희정은 지난 시즌을 상금 49위로 마쳤다. 무난한 성적표지만 통산 5승의 최고 인기 선수 중 한 명인 임희정이어서 좀 어울리지 않았다. 2019년 데뷔 후 상금 톱10을 벗어난 해가 없었는데 2022년 봄 대회장으로 가던 중 당한 큰 교통사고 뒤로 다소 리듬을 잃었다.
후유증이 가장 지독하게 영향을 미친 게 바로 퍼트다. 임희정은 “사고 후유증으로 쉽게 말해 감각이 무뎌진 것”이라고 했다. “주변에서는 ‘아니, 왜 치다 말아?’라고 하는데 저만 느끼는 이상함이어서 설명이 안 된다. 똑바로 서서 똑바로만 치면 들어가는 쇼트 퍼트인데 이게 빠지니까 상식적으로 나도 이해가 안 됐다”고 돌아봤다. 2020년 평균 퍼트 수 부문 전체 4위였던 그가 지난해는 109위에 그쳤다. 그래도 샷은 그린 적중률 75%를 넘길 만큼 가장 잘했을 때의 수준을 유지했다.
임희정은 “(퍼트 개선을 위해) 여러 방법을 배우고 선배들 조언도 듣고 하는 과정에서 ‘골프는 완벽해지려고 하면 안 되는구나’하고 새삼 느꼈다”며 “완벽해지려는 욕심 끝에 이런 시기가 온 것이고 그래서 부족한 상태로 뭔가 계속 메우려고 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했다. “너무 간절해서 퍼터를 안고 잔 적도 있다”고 털어놓은 그는 “포인트 레슨을 받으러 다니기도 하면서 하반기 들어 좀 나아지기 시작했다”고 조심스럽게 희망을 얘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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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로 지난 시즌 끝에서 두 번째 대회에서 우승 경쟁을 벌인 끝에 최종전 출전 자격을 얻었고 최종전에서 공동 8위에 이름을 올렸다. 4주 연속 컷 탈락하던 시즌 초반을 생각하면 놀라운 발전이었다. “주말까지 예약했던 숙소에 환불을 요청하는 상황을 계속 겪으면서, 뭐랄까 초심을 찾을 수 있었다”는 임희정은 “섣부른 클럽 교체를 포함해 지난 2년 간 시행착오는 다 겪은 느낌이다. 작년으로 딱 마무리를 한 기분”이라고 했다.
기술적인 면뿐 아니라 환경적으로도 지난 2년은 앞으로의 긴 시간을 위한 준비와 연습의 2년이었다. 부모로부터 독립한 생활에 적응하는 과정에서 “스스로 일정을 짤 수 있고 운동도 얼마든지 가능한 거구나, 홀로서기가 되는구나, 확인할 수 있었다”고도 했다. “운동 선수니까 스트레스를 어떻게 푸느냐가 참 중요한데 독립 후 혼자서 생각할 시간이 많다 보니 생기가 빨리 회복되고 동기가 생기는 부분이 있더라고요.”
인테리어 소품에 관심이 생겼고 여행 가면 접시가 제일 먼저 눈에 들어올 정도가 됐다. 임희정은 “다음 비시즌 때는 요리를 열심히 배워서 주변 사람들 초대해 대접할 계획”이라고 했다. 취미로 하던 요가에 시즌 뒤 본격적으로 빠져들어 물구나무서기를 혼자 할 수 있는 정도로 수준을 끌어올리기도 했다. 지난 연말에는 처음으로 부모님 ‘효도여행’도 보내드렸다고.
데뷔 후 6년을 돌아보며 7년 차를 맞는 자신에게 한마디 해 달라는 요청에 임희정은 “이제 잘할 때 됐다. 시행착오는 그만하자. 경험했던 것들을 토대로 제 기량을 뽐낼 수 있는 시즌을 계속 보내면 좋겠다”고 했다. 새 시즌 새로운 도전으로는 “타이틀은 한 번도 못 받아봤으니까 상금왕으로 하겠다”고 시원하게 말했다. “그 전에 빨리 1승을 해서 완전히 회복됐다는 것을 보여드리고 싶어요. 기다려주신 분들께 성적으로 보답해야죠.” 임희정은 19일 태국으로 겨울 훈련을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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