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 개인의 감성을 표현하고 해석은 관객에게 맡기는 추상화가 갤러리를 장악한 요즘, ‘일’을 주제로 인간 군상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담아낸 풍경화를 소개한 전시가 호평을 받고 있다. 서울 종로구 국제갤러리에서 열리고 있는 박진아 작가의 개인전 ‘돌과 연기와 피아노’다.
전시는 국제갤러리 건물 사이 골목에 놓인 한옥 건물에서 열리고 있다. ‘돌와 연기와 피아노’라는 서로 어울리지 않은 세 개의 단어로 조합된 제목은 작가가 2023년 부산시립미술관 그룹전을 준비할 당시 미술공간에서 발견한 모습(돌), 국제 갤러리 레스토랑의 주방 풍경(연기), 수작업으로 피아노를 만드는 독일 슈타인그래버 공장(피아노)의 모습을 담은 작품이 전시된다는 의미다. 작가는 전시 제목에 큰 의미를 부여하지 않은 듯하다. 작가에게 제목보다 중요한 것은 각 장소와 장소에서 발견된 사람들의 모습 그 자체다.
전시장에 걸린 40여 점의 작품에는 특별한 기교나 꾸밈이 없다. 작가는 유화와 수채화로 있는 그대로의 현실을 보여주는데 집중한다. 그는 “나는 사이의 시간을 그린다”고 말했는데, 작품은 실제로 사람과 사람 사이의 수많은 찰나의 시간을 포착하고 있다. 연기 나는 주방에서 땀을 흘리며 요리하는 사람, 주변을 의식하지 못한 채 피아노를 제작하는 장인, 미술관에서 전시를 준비하는 직원들까지 그의 그림 속에는 주변에 언제나 존재하지만 특별히 관심을 기울이지 않으면 볼 수 없었던 이들의 성실한 움직임이 세밀하게 담겨져 있다.
반전은 작가가 이 그림들을 직접 풍경을 보고 그린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작가는 스냅사진으로 일상의 평범한 순간을 촬영하고 이를 상상을 통해 다시 캔버스에 재구성하는 작업을 진행한다. 그래서 캔버스에는 서로 동시에 일어날 수 없는 일이 동시에 일어나고 있기도 하다. 예컨대 ‘키친’의 경우 한 명의 요리사는 가운데에서 재료를 접시에 담는데, 또 다른 주방 직원들은 전혀 다른 작업을 하고 있다. 피아노공장 장인들의 모습을 그린 작품도 마찬가지다. 각기 다른 작업을 하고 있는 노동자들은 자신들의 모습이 화폭에 담기는 지도 모른 채 작업에 집중한다. 그들의 놀라운 집중의 결과물은 음식, 피아노 등이 되어 우리 앞에 온다.
작가는 분명 자신이 본 현장에 존재했고, 현재도 존재하고 있는 상황을 조합해 자신만의 장면으로 만든다. 없는 풍경이지만 틀림없이 있음직한 풍경이다. 이같은 장면을 포착할 수 있는 건 아마도 작가가 사람을 끊임없는 애정의 눈으로 바라보고 배려한 덕분일 것이다. 덕분에 작품은 한없이 서정적이지 않고, 감성적이지도 않다. 현장에서 한 발 떨어져 냉철하게 그렸지만, 그들의 생생한 노동의 현장은 우리네 일상처럼 느껴져 관객의 발걸음을 멈추게 만든다. 실제로 전시는 입소문을 타고 삼청동을 오가는 젊은이들의 공감을 사고 있다. 전시장을 찾은 관객들은 우리의 일상과 일상 사이에 놓인 수많은 사람들의 일과 감각을 넌지시 바라본다.
박진아는 서울대 서양화과를 졸업한 런던 첼시미술대에서 순수미술로 석사학위를 취득했다. 성곡미술관, 삼성미술관 플라토, 국립현대미술관, 광주비엔날레 등에서 전시에 참여했다. 이번 전시는 국제갤러리 2관과 한옥 전시공간에서 열리고 있다. 전시는 1월 26일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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