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법인세율 하한선을 15%로 묶은 국제 협약에서 빠지겠다는 의사를 밝히며 독자적인 감세 정책을 추진하겠다는 의사를 내비쳤다. 미국은 자국 기업들을 보호하면서 감세를 통해 경제 활력을 높이고 있는데 한국은 탄핵 국면의 장기화로 법인세 인하는커녕 반도체 같은 첨단산업 지원조차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 글로벌 경제 전쟁에서 한국 기업들만 손발이 묶인 채 뛰고 있는 셈이다.
22일 기획재정부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은 20일(현지 시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글로벌 조세 합의’라는 행정명령에 서명했다. OECD 국가들의 서명에도 미국 의회가 채택하지 않은 조세 합의 조항은 미국에서 효력이 없다는 내용이다. 법인세 실효세율 하한선을 15%로 정한 글로벌 최저한세 협의를 파기한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재무부 장관에게 해외 정부 중 미국 기업에 불리한 세무 규칙을 시행하는 곳이 있는지 조사해 60일 이내에 결과를 통보하라고도 지시했다. 외국 정부가 미국 시민·기업에 차별적인 세금 정책을 시행할 경우 이에 대응해 해당 국가에 세율을 2배 올리겠다는 방침도 밝혔다. 다른 국가에 글로벌 최저한세를 시행하지 말라고 압박한 셈이다. 동시에 구글과 애플 같은 미국이 본사인 다국적 기업에 법인세를 함부로 물리지 말라는 경고기도 하다.
트럼프 행정부가 글로벌 최저한세 탈퇴와 세금 보복을 언급한 것은 감세 정책 기조의 연장선이다. 그동안 트럼프 대통령은 올해 만료되는 ‘감세와 일자리법(TCJA)’을 연장할 것이라고 강조해왔다. TCJA는 트럼프 대통령이 첫 임기 때인 2017년 통과시킨 법으로 법인세율을 35%에서 21%로, 소득세 최고세율을 39.6%에서 37%로 내리는 것을 뼈대로 한다. 여기에 트럼프 대통령은 법인세율을 15%로 추가 인하한다고 밝히기도 했다.
이 같은 감세 기조는 미국 경제에 훈풍을 몰고오고 있다. 세계은행(WB)은 최근 발간한 경제 전망 보고서에서 TCJA가 연장되면 내년 미국 경제성장률이 0.4%포인트 높아질 수 있다고 분석했다. 추가로 법인세를 낮추고 글로벌 최저한세 적용이 제외될 경우 미국 기업들은 본사와 공장을 미국으로 옮길 유인이 커진다. 이는 경제 활성화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얘기다.
시장에서는 트럼프의 세금 전쟁에 맞춰 한국도 법인세를 포함해 감세에 나서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실제로 국내에서는 자체 법인세율 하한 탓에 기업 세제 지원마저 효과를 내지 못하고 있다. 한국은 2014년부터 법인세 과세표준 1000억 원 초과 기업에 17%의 최저한세를 설정하고 있다. 투자분에 세액공제를 받는다고 해도 실제 세율이 최저한세율(17%)을 밑돌 경우 공제분을 일부 다음 해로 이월해야 한다. 이 때문에 정치권에서는 반도체 투자세액공제율을 5%포인트 높이는 ‘K칩스법’ 개정안의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주장까지 제기된다. 한 국회 관계자는 “어차피 삼성전자는 지금 최저한세율에 걸려 투자세액공제율을 확대한다고 해도 당장 혜택이 거의 없다는 얘기들이 있다”고 설명했다.
이를 고려하면 법인세를 인하해야 한국 기업들도 글로벌 경쟁에서 살아남을 수 있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전직 정부 고위 관계자는 “세계는 경제 전쟁이라고 할 만큼 반도체와 인공지능(AI) 등 첨단산업에서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다”며 “트럼프 대통령은 방대한 시장을 가진 미국에 공장을 지으면 세금을 낮춰주고 혜택을 주겠다고 하는데 경쟁이 되겠느냐”고 우려했다.
정부는 신중하다. 한 세제 당국 관계자는 “향후 논의에 따라 정부 측의 대응이 정해져야 할 것 같다”며 “OECD 조세 조약 체계 내에서 대응해야 할 것”이라고 전했다.
전문가들은 정부가 바뀌어야 한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오문성 한양여대 세무회계학과 교수는 “법인세율 인하·단순화는 세계적인 트렌드”라며 “트럼프 행정부 집권을 법인세제 개편의 계기로 봐야 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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