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초 들어 한국 증시가 저평가 매력으로 상승 곡선을 그리자 개인투자자들의 이른바 ‘빚투(빚 내서 투자)’ 규모가 지난해 12월 윤석열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 직전 수준을 회복했다. 상당수 증시 전문가들은 다만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의 정책 불확실성이 여전히 큰 데다 한국 경제와 기업에 뚜렷한 호재도 보이지 않는다는 점을 들어 투자에 신중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23일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22일 국내 투자자들의 신용 융자 잔액은 16조 6810억 원으로 비상계엄 선포 직전인 지난해 12월 3일 16조 5658억 원을 넘어섰다. 지난해 11월 21일 16조 6926억 원 이후 두 달 만에 최대치이기도 하다.
특히 코스닥의 신용 융자 잔액은 7조 94억 원으로 지난해 11월 15일 7조 593억 원 이후 처음으로 7조 원을 넘어섰다. 유가증권시장 신용 융자 잔액도 9조 6126억 원으로 비상계엄 직후인 12월 4일 9조 6254억 원 이후 최대 수준으로 불었다. 신용 융자 잔액은 투자자가 주식을 살 목적으로 증권사에서 돈을 빌린 뒤 갚지 않은 돈이다.
앞서 지난해 10월 18조 원을 넘었던 국내 증시의 신용 융자 잔액은 11월 트럼프 대통령 당선으로 16조 원대로 내려앉은 데 이어 12월에도 비상계엄 선포 이후 급감 양상을 보였다. 국내외 증시 환경이 극도로 불안정해지자 국회의 윤 대통령 탄핵소추안 부결 직전인 12월 12일에는 신용 융자 잔액이 15조 1632억 원까지 줄었다. 코스피 시장의 신용 융자 잔액은 지난해 1월 3일 이후 11개월여 만에 처음으로 8조 원대까지 감소했다. 코스닥 시장의 당시 신용 융자 잔액 6조 2415억 원은 2020년 6월 19일(6조 2383억 원) 이후 4년 6개월 만의 최저치였다.
신용 융자 잔액이 다시 늘어나는 것은 올 들어 국내 증시가 싼 가격을 필두로 반등 기미를 보이고 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윤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 의결, 구속 등이 진행되며 국내 정치 불확실성이 조금씩 해소되면서 그간 평가절하됐던 주가가 일부 회복되는 분위기다. 신용 융자 잔액은 올 들어서만 15조 8170억 원에서 8640억 원이 더 늘어났다. 코스피와 코스닥 모두 4384억 원, 4255억 원씩 증가세를 보였다.
실제 지난해 말 각각 2300대, 600대에 머물렀던 코스피와 코스닥 지수는 올 들어 이날까지 각각 4.83%, 6.76% 상승하며 2500 선과 700 선을 재돌파했다. 이 기간 일본의 닛케이, 중국의 상하이종합, 홍콩의 항셍중국기업(HSCEI·홍콩H), 인도의 센섹스 등 아시아 주요국 주가지수 대다수가 하락한 점을 감안하면 수익률이 월등히 좋았던 셈이다.
전문가들은 트럼프 대통령 취임 이후 미국 증시 쏠림 심화 가능성, 금리와 환율 불확실성, 외국인 매수세 약화, 국내 정치 불안정 등의 요인을 들며 빚을 내면서까지 지나치게 적극적으로 국내 주식을 저가 매수하는 일은 위험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올해 한국 경제성장률과 국내 기업 실적에도 적신호가 켜진 상황이라 현시점에서는 특별한 호재가 없다는 이유도 위험 요소로 꼽았다. 이달 3~9일 연속으로 국내 주식을 사던 외국인투자가도 10일부터 이날까지는 코스피와 코스닥 주식을 도합 1조 9000억 원 가까이 내다팔았다. 이 기간 외국인이 국내 증시 전반에 걸쳐 매수 우위를 보인 날은 16일과 22일 2거래일뿐이었다.
이재원 신한투자증권 연구원은 “코스피에 별다른 재료가 없는 가운데 금리·달러가 동반 반등하자 외국인 자금이 이탈하기 시작했다”며 “지난해 한국의 경제성장률이 예상치를 밑돈 데 대해서도 투자심리가 악화되고 있다”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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