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캐나다와 멕시코·중국에 고율의 관세를 최종적으로 부과하게 되면 중국보다 한국의 타격이 더 클 수 있다는 분석이 나왔다. 미국이 중국을 겨냥해 관세 폭탄을 직접 투하하는 형태지만 중간재 수출이 많은 한국의 생산 손실이 더 클 것이라는 얘기다. 전문가들은 미국의 대중 압박이 거세질수록 국내 제조업 위기가 심화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23일 한국관세무역개발원의 계간 학술지 ‘관세무역연구’에 실린 ‘미국발 보편관세 적용의 파급영향 분석’ 연구에 따르면 미국이 멕시코와 캐나다·중국에 고율 관세를 적용할 경우 한국의 제조업 생산량이 2023년 대비 0.45% 감소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중국의 감소율(-0.19%)보다 크다.
이는 미국 정부가 멕시코와 캐나다에 20%, 중국에 60%의 관세를 부과하는 경우를 가정한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다음 달 1일부터 멕시코와 캐나다에 25%, 중국에 10%의 관세를 매기겠다고 밝힌 상태다. 현 상황과 수치에서 다소 차이가 있지만 개념적인 틀이 비슷해 의미가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특히 대중 관세는 10%로 출발하지만 중국과의 협상 결과에 따라 60%까지 올라갈 수 있다는 게 미국 현지의 분위기다. 연구를 진행한 유정호 부경대 국제통상학부 교수는 “일본의 생산량 감소 폭도 0.82%로 컸는데 이는 중국이 주로 동아시아 국가의 중간재를 활용해 최종재를 생산하고 이를 미국에 수출하는 무역구조와 관계가 있다”고 설명했다.
한국무역협회에 따르면 지난해 한국의 대중국 수출액 중 85.8%가 메모리반도체와 디스플레이 등을 포함한 중간재다. 한국은행이 지난해 발간한 ‘공급망 연계성을 고려한 대중국 수출 평가와 시사점’이라는 이름의 보고서를 보면 트럼프 대통령의 공약대로 관세가 인상되면 한국의 대중 수출 연계 생산이 6% 이상 감소할 것으로 추정됐다. 트럼프 대통령의 관세 전쟁 불똥이 한국에 튈 수 있다는 의미다.
논문은 미국이 보편관세보다 캐나다·멕시코·중국 등 특정 국가만을 대상으로 고율 관세를 매길 가능성이 높다고 봤다. 전 세계 국가에 10%의 보편관세를 매길 경우 미국의 물가 상승률이 2023년 대비 2.05%를 기록할 것으로 보이는 반면 캐나다와 멕시코에 20%, 중국에 60%의 관세를 부과하면 인플레이션이 0.9%에 그칠 것으로 분석됐기 때문이다. 유 교수는 “트럼프 대통령이 대통령 선거 경선 때부터 인플레이션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언급을 수차례 한 만큼 경제적 피해가 더 크게 발생하더라도 보편관세보다는 특정국에 대한 추가 관세 부과를 시행할 가능성이 더 높다고 판단할 수 있다”며 “미국의 관세 조치에 따른 공급망 상의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는 정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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