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 지난해 전 세계 벤처투자의 60% 이상을 독식한 것으로 나타났다. 인공지능(AI) 열풍을 주도하고 있는 스타트업이 미국에 몰려 있어서다. 벤처 기업이 한 번에 10조 원 이상의 투자를 유치하는 등 AI 시대 이전에는 없었던 대규모 자금조달 사례도 심심치 않게 나오고 있다. 이와 달리 AI 유니콘(기업가치 1조원 이상 비상장 기업)이 고작 1곳 있는 한국에선 다수의 스타트업이 AI 인프라 및 인력 부족에 허덕이고 있는 실정이다.
23일 해외 시장조사기관 딜룸에 따르면 지난해 미국에서 진행된 전체 벤처캐피털(VC) 투자 규모는 1907억 달러(약 274조 원)로 전년(1467억 달러) 대비 30% 증가했다. 이에 따라 벤처투자 상위 10개국 중 미국이 차지하는 비중은 약 65.1%에 달했다. 이 비중은 전년(54.8%)에 비해 10.3%포인트 오른 수치다.
반면 2위인 중국의 지난해 벤처투자 규모는 377억달러로 2023년보다 29% 쪼그라들었다. 3위인 영국 또한 같은 기간 11% 감소했다. 인도, 독일, 프랑스, 캐나다, 일본, 한국, 네덜란드가 뒤를 이었다.
미국 중심의 벤처투자 추세가 더욱 심화한 것은 AI 기술을 이끄는 다수의 스타트업이 실리콘밸리에 집결해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지난달에는 AI 데이터 기업인 데이터브릭스가 안드레센호로위츠 등 유명 VC로부터 총 100억 달러의 자금조달에 성공하며 업계를 깜짝 놀라게 했다. 챗GPT 운영사인 오픈AI와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가 설립한 xAI도 지난해 각각 66억 달러, 60억 달러를 유치했다.
이 같은 조달 규모를 두고 거품 논란이 불거지기도 했지만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취임 직후 AI에 대한 전폭적인 지원을 공언하면서 미국의 AI 드라이브는 더욱 거세질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트럼프 대통령은 21일(현지시간) 오픈AI와 오라클, 일본 소프트뱅크가 미국에 최소 5000억달러를 투자해 새로운 AI 합작 기업 ‘스타게이트’를 설립한다고 발표했다. 그러면서 비상권한을 통해 미국 내 AI 공장 설립과 공장 운영에 필요한 전력 공급이 쉬워지도록 제도를 개선하겠다고 약속했다.
이에 반해 한국의 AI 개발 여건은 여전히 미흡한 탓에 국내 AI 스타트업의 경영 환경이 녹록지 않다는 평가다. 소프트웨어정책연구소 보고서에 따르면 2023년 말 기준 AI 분야 부족 인력이 8579명으로 집계됐다. 이는 3년 전(1609명) 대비 5.3배나 치솟은 것이다. 또한 국내 AI 기업 중 53.2%가 AI 인프라 부족을 사업상 어려움으로 꼽았다. 한 스타트업 대표는 “AI 솔루션을 개발하려면 엔비디아의 그래픽처리장치(GPU)가 필요하지만 여전히 구하기가 쉽지 않다”면서 “GPU 대신 고가의 AI 장비가 갖춰진 데이터센터를 이용하고 싶어도 접근성이 떨어진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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