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모리반도체 왕국에서 열린 SK하이닉스의 대관식.’
23일 진행된 SK하이닉스의 실적 발표회를 지켜본 반도체 업계 관계자들 사이에서는 “SK하이닉스의 1위 선언 같았다”는 반응이 나왔다. 메모리 시장의 만년 2등이었던 SK하이닉스가 이제는 고대역폭메모리(HBM)와 같은 특정 제품뿐만 아니라 단일 D램 공정에서까지 경쟁 업체들의 추격을 뿌리칠 수 있을 정도로 격차를 벌렸다는 자신감을 여러 대목에서 거침없이 드러내면서다. SK하이닉스는 또한 이익 창출 능력이 떨어지는 구형 메모리 분야에서는 생산량 조절의 가능성을 열어놓기도 했다.
◇10나노급 6세대 D램 “목표 수율 넘었다”=SK하이닉스는 우선 첨단 D램 공정에 관한 기술적 격차를 강조했다. 김우현 SK하이닉스 최고재무책임자(CFO·부사장)는 10㎚(나노미터·10억분의 1m)급 6세대 D램의 개발 현황에 대한 질문에 “이미 개발 단계에서 초기 양산 목표 수율을 웃돌았다”고 강조했다. SK하이닉스는 지난해 하반기 이 D램을 세계에서 최초로 개발했다.
SK하이닉스의 발표대로라면 6세대 D램 공정에 관한 개발 속도는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수준이다. 삼성전자는 회사 내부에서 10나노급 6세대 D램을 올 5월 안에 양산 승인을 받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그러나 제품 재설계를 결정했을 만큼 공정 구현이 까다롭고 어려운 것으로 알려졌다. SK하이닉스는 제품을 먼저 개발한 것은 물론 생산성까지 고도화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 CFO는 “올해 하반기 일반 D램에 공정을 적용해 양산을 시작하고 유의미한 수준의 원가 절감까지 가능할 것”이라고 밝혔다.
최근 거세지는 중국 D램 업체의 추격 역시 기술력으로 극복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김 CFO는 “지난해 하반기부터 중국 D램 회사들이 구형 제품인 더블데이터레이트(DDR)4 등의 공급을 확대하고 있지만 최신 제품인 DDR5 제품에서는 확실한 격차가 존재한다”고 말했다.
◇HBM4 16단 내년 하반기 출시=HBM 사업도 여전히 강세다. 회사는 최첨단인 5세대 HBM(HBM3E) 12단 제품의 출하량이 올 상반기 안에 HBM3E 제품 가운데 절반 이상을 차지할 것으로 내다봤다.
차세대 제품 역시 순조롭게 개발되고 있다. 6세대 HBM(HBM4) 12단 제품은 올해 안에 출시되고 초고적층 제품인 HBM4 16단 칩은 내년 하반기에 선보일 방침이다. SK하이닉스 측은 “2025년의 HBM 매출은 전년 대비 100% 성장할 것”이라고 관측했다.
내년 HBM 판매 물량에 대한 협상도 이미 착수했다. 김기태 SK하이닉스 HBM 영업&마케팅 담당은 “올해 상반기 중에는 내년 물량의 대부분을 판매 완료할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올해 설비투자도 HBM 중심으로 이뤄진다. 회사는 올해 설비투자액(CAPEX)의 대부분이 HBM 라인을 확보하기 위한 청주 M15X, 2027년 첫 가동 예정인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에 쓰일 것이라고 발표했다.
업계에서는 SK하이닉스가 당분간 최첨단 10나노급 6세대 D램보다 HBM3E 12단 등에 활용되는 10나노급 5세대 공정 확장에 집중할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한 업계 관계자는 “5세대 D램을 공격적으로 증설하기 위해 주성엔지니어링·VM 등 전 공정 장비 회사에 다수의 장비를 주문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메모리 ‘디커플링’ 심화에 구형 제품 감산하나=올해 SK하이닉스는 메모리 ‘디커플링’ 현상 심화에도 대응할 것으로 보인다. 현재 메모리 시장에서는 HBM·서버용 메모리 등 초고성능 제품의 판매가 증가하고 있다. 반면 PC·스마트폰 제품 등 범용 D램 수요는 정체돼 시장 양극화가 심화하는 추세다.
SK하이닉스는 범용 제품의 생산량을 줄이는 방안을 살펴보고 있다. 우선 회사는 실적 발표회 자료에서 1분기 D램 비트 그로스(D램 생산량 증가율)가 10% 초반으로, 같은 기간 낸드는 10% 후반대로 줄어들 것이라고 설명했다. 사실상 감산을 시사하는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한편 SK하이닉스는 연간 고정배당금을 기존 1200원에서 1500원으로 상향 조정하며 총 현금 배당액을 1조 원 규모로 확대한다고 발표했다. 김 CFO는 “신규 주주 환원 정책을 통해 당사의 재무 건전성이 강화되면 안정적인 기업가치 제고가 가능하고 실적 개선이 이어지면 추가 환원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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