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 혁신을 불러올 것으로 전망되는 양자컴퓨터의 상용화 시점에 관한 관심이 고조되고 있다. 구글과 IBM, 아마존웹서비스(AWS), 마이크로소프트(MS) 등 글로벌 공룡 기업들을 비롯해 아이온큐, 리게티컴퓨팅, 파스칼(Pasqal), 큐에라(QuEra) 등 양자컴퓨터 스타트업도 일제히 개발에 뛰어들며 시장이 달아오르고 있다. 업계에서는 이미 양자컴퓨터 기술이 산업 현장에 투입돼 가능성을 입증한 상황이기에 상용화가 멀지 않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다만 오류 최소화 등 과제 해결에 10년 이상 기간이 더 필요하다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다.
표창희 IBM 퀀텀 아시아태평양 사업부 담당(상무)가 21일 서울 영등포구 한국IBM 사옥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기업·기관·연구소에서 양자컴퓨터를 사용하고 있다”며 “항공·자동차·바이오·금융 산업 등에서 활용하고 있다”고 밝혔다. 아직 기존 컴퓨터를 능가할 수 있는 과학적 도구로서 활용할 수 있는 ‘유틸리티 단계’이지만 이미 성능을 입증하고 있다는 것이다.
양자컴퓨터는 기존 슈퍼컴퓨터로도 해결하지 못하는 복잡한 문제를 빠르게 풀 수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통상 컴퓨터는 0과 1로 구성된 숫자 조합을 차례대로 계산해 작동한다. 양자컴퓨터는 0과 1을 동시에 처리할 수 있는 큐비트(qubit) 기반이다. 이를 통해 기존 슈퍼컴퓨터로 풀지 못하는 문제를 빠르고 정확하게 풀 수 있다. 큐비트는 한 입자가 두 가지 상태로 존재할 수 있다는 ‘중첩’과 한 입자의 상태가 결정되면 다른 입자의 상태도 결정되며 정보를 순간적으로 공유하는 ‘얽힘’으로 구현된다. 시모네 세베리니 AWS 양자컴퓨팅 디렉터는 24일 서울 강남구 AWS코리아 사옥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양자컴퓨터는 망원경처럼 근간이 되는 과학적인 도구"라며 "양자컴퓨터로 물리학의 본질에 접근하면 완전히 새로운 산업이 탄생할 것"이라고 말했다.
양자컴퓨터는 클라우드 등을 통해 산업·연구 현장에서 활용되고 있다. 최적화·시뮬레이션·머신러닝(ML)에 투입된다. 자동차 산업이 대표적이다. 현대자동차는 아이온큐와 손 잡고 자율주행·배터리 개발 등에서 양자컴퓨터를 이용하고 있다. 또 현대자동차는 자체 양자 컴퓨터 알고리즘을 개발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벤츠는 IBM과 자동차 디자인과 공정 최적화, 배터리 성능 개선 모델링 등에 활용하고 있다. 또 제조 결함 분석 및 제품 추천 등에 양자컴퓨터를 이용하는 방법을 모색하고 있다. BMW는 AWS와 연료전지 개발에 활용했다. 개발 핵심 공정인 산소 환원 반응(ORR)을 시뮬레이션하는데 양자 컴퓨터용 계산화학 소프트웨어 플랫폼인 인콴토(InQuanto)를 활용했다. 에어버스와 BMW 그룹은 양자컴퓨터 기반의 시뮬레이션을 활용한 부식억제·공기역학설계 개선 등 관련 연구대회를 운영하고 있다.
금융권에서는 최적화와 포트폴리오 관리 등에 양자컴퓨터를 사용하고 있다. 웰스파고와 HSBC는 상품 개발과 시장 변화 분석 등에 양자컴퓨터를 활용하고 있다. 미국 주요 은행인 JP모건체이스와 AWS는 계산과학 난제인 ‘최대독립집합’ 문제 연구에 양자컴퓨터를 활용했다. 이를 통해 양자컴퓨터가 금융, 통신, 네트워크 등 다양한 산업 관련 최적화 문제를 해결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을 입증했다.
바이오 분야에도 양자컴퓨터가 이용되고 있다. 모더나는 IBM 양자컴퓨터를 활용해 mRNA 구조 예측 연구에 활용했다.
연구소와 기관에서도 양자컴퓨터가 활약하고 있다. 안도열 서울시립대학교 전자전기컴퓨터공학부 연구팀은 AWS 기반으로 비선형 유체역학 방정식 해결을 위한 양자 알고리즘을 개발했다. 인도 전자정보기술부와 AWS는 100개 이상의 인도 대학에 양자 하드웨어, 시뮬레이터, 프로그래밍 도구를 제공하고 있다. 52개 학술기관과 5개 스타트업에 연구 지원금을 제공했다. 논문 34건이 발간되는 성과를 거뒀다.
2030년 전후로 양자컴퓨터가 본격적으로 활용될 것이라는 주장이 나온다. 구글과 IBM은 양자컴퓨터의 본격 상용화를 위해 속도를 내고 있다. 2021년 구글은 2029년까지 100만 개의 물리적 큐비트로 이뤄진 양자컴퓨터를 만들겠다는 계획을 밝힌 바 있다.
IBM은 2029년 오류 수정이 가능한 양자컴퓨터를 개발하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외부의 저항에 쉽게 오류가 발생하는 양자컴퓨터의 단점을 극복할 수 있다는 것이다. IBM은 효율적인 ‘오류 수정’ 기법을 개발했기 때문에 양자컴퓨터의 확산을 자신하고 있다. IBM은 지난해 양자 오류 수정 코드인 ‘그로스’ 코드를 개발했다고 국제 학술지 네이처에 발표했다. 예전에는 오류 수정을 하려면 3000개의 물리적 큐비트가 필요했지만 그로스는 288개가 필요하다. 기존 방법 보다 약 10배 효율적으로 오류를 수정할 수 있게 된 것이다. 표 상무는 “2~3년 내로 양자컴퓨터의 성능이 슈퍼컴퓨터를 뛰어넘는 '양자 우위'에 도달할 수 있을 것”이라며 “2029년 오류가 완화되면 양자컴퓨터를 더 널리 활용할 수 있을 것”이라고 전했다.
마이크로소프트는 올해 기업들이 양자컴퓨터 도입을 고려해야한다고 밝혔다. 미트라 아지지라드 마이크로소프트 전략적미션 및 기술대표는 15일 올해를 ‘양자 기술 준비 해(Quantum-Ready Year)’로 선언하며 “우리는 신뢰할 수 있는 양자컴퓨팅 시대의 초입에 와 있다”며 “향후 1년 내 양자 연구 개발이 속도가 가속화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어 “기업들은 도래할 양자컴퓨터 시대에 대비해야 한다”고 전했다. 다만 상용화 시점은 구체적으로 제시하지 않았다.
다만 일각에서는 10~20년간 기술을 발전해야 한다는 분석을 제기한다. 오류 해결 기술을 고도화해야 할뿐만 아니라 초저온 방식의 경우 냉각 시스템 구축과 운영 비용이 높다는 점도 해결해야 하기 때문이다.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CEO)가 대표적이다. 황 CEO는 이달 7일 CES 2025에서 양자컴퓨터 활용 시기에 대한 질문을 받고 "매우 유용한(useful) 양자컴퓨터에 대해 15년이라고 말한다면 아마도 (그것은) 초기 단계일 것"이라며 "30년은 아마도 후기 단계일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하지만 20년을 선택한다면 많은 사람이 믿을 것이라고 생각한다”며 유용한 양자컴퓨터의 등장까지 20년은 걸릴 수 있다는 취지로 말했다. 인스타그램 운영사 메타의 저커버그 CEO는 “양자컴퓨터의 광범위한 도입까지 10년 이상을 소요할 것이라는 업계의 견해를 지지한다”고 말했다.
AWS는 상용화 시점에 대해 신중한 입장이다. 세베리니 디렉터는 “현재 양자컴퓨터는 초기 시제품"이라며 "양자컴퓨터를 실제 비즈니스에 언제 적용할 수 있을지는 아직 모른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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