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국내 증시가 주요국 증시 대비 호실적을 거두고 있는 상황이지만 투자자들의 관심은 여전히 미국 시장에 쏠려 있다. 국내 경기 침체로 기업 실적과 전망이 나날이 악화하고 있는 상황 속에서 국내 증시가 저평가 요인만으로 상승 추세를 이어 나가기엔 한계가 있다는 반응이다. 반면 미국 증시의 경우 미국 우선주의를 표방하는 트럼프 2기 행정부 출범과 인공지능(AI), 자율 주행 등 신산업에서의 압도적인 경쟁력 등을 높이 평가하며 더욱 투자 자금이 몰리고 있는 형국이다.
27일 금융정보 업체 에프앤가이드(064850)에 따르면 지난 24일 기준 국내주식형 펀드(사모 제외)의 설정액은 52조 6648억 원으로 올 들어서만 2069억 원 증가했다. 같은 기간 해외주식형 펀드의 설정액은 2조 1722억 원 증가했다. 국내주식형 펀드 설정액 증가분 대비 10배 이상 많은 수치다. 해외주식형 펀드 설정액 증가분 대부분은 북미주식형 펀드 설정액 증가분에서 기인했다. 북미주식형 펀드의 설정액은 올 들어서만 1조 8834억 원 증가했다.
올 들어 코스피 지수가 4.83% 상승하며 호실적을 거둔 것에 비해 아쉬운 수치다. 이달 코스피 지수는 지난해 12월 3일 비상계엄 사태가 마무리 국면에 접어들며 치솟았던 원·달러 환율이 하락세를 맞이하고 주가순자산비율(PBR) 1미만의 저평가 매력이 부각되면서 상승 곡선을 그렸다.
같은 기간 미국 증시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정식 취임에 따른 정책 불확실성이 겹치며 주춤한 모습을 보였다. 미국 대표 지수인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500과 나스닥은 각각 4.03%, 3.85% 상승하며 코스피 지수보다 못한 수익률을 기록했다. 연초 일본 니케이(0.16%)와 상해 종합(-3.63%) 지수 역시 국내 증시보다 부진한 모습을 보였다.
호조에도 불구하고 투자자들 사이 국내 증시 장기 상승에 대한 기대는 옅은 상황이다. 국내 경기 침체가 길어지며 좀체 회복될 기미가 보이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한화투자증권에 따르면 코스피의 올해 지배주주 순이익 전망치는 지난해(175조 2000억 원) 대비 20.5% 증가한 211조 1000억 원이다. 하지만 이는 지난해 9월 고점 대비 13% 하향 조정된 수치기도 하다.
시장 전문가들은 세계 제조업 경기 불황과 높아진 환율 수준을 감안했을 때 전망치가 추가적으로 하향 조정될 여지가 크다고 보고 있다. 더욱이 마국 우선주의를 표방하며 무역 상대 국가에 관세 부과 의지를 연일 피력하고 있는 트럼프 2기 행정부 출범도 국내 증시가 장기 상승 추세로 전환하는 데 걸림돌이 되고 있다. 한지영 키움증권 연구원은 “여전히 기업 이익 전망 하향은 현재 진행형으로 이른 시일 내에 추세 상승을 기대하기는 어렵다”고 설명했다.
반면 투자자들은 미국 증시가 장기 우상향 할 것이란 강한 믿음을 보이고 있다. 2023년과 지난해 연속 연간 20% 이상의 수익률을 달성하며 고점 부담이 가중됐지만 이를 여의치 않는 모습이다. 시장 전문가들 역시 올해에도 미국 예외주의가 계속될 것으로 보고 있다. AI, 자율 주행, 드론, 양자컴퓨팅 등 미래 신산업 대부분 분야에서 미국 기업이 선두를 달리고 있기 때문이다. 국내와 달리 경제와 기업들의 실적이 탄탄한 점 역시 장기 상승을 기대하게 하고 있다.
서정훈 삼성증권 연구원은 “연초 미국 증시 신고가 랠리는 AI 투자와 유가 인하 등 친(親)시장적인 정책을 내세운 트럼프 행정부와 기업들의 튼튼한 기초체력(펀더멘탈) 덕에 가능했던 일”이라며 “연초 이후 공개됐던 미국 경제 지표가 대부분 시장 기대치를 웃돌았던 사실을 감안하면 향후 다가올 실적 시즌 역시 우려보다는 기대가 더 큰 상황”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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