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디아르 감독의 오페라 뮤지컬 영화 ‘에밀리아 페레즈’의 기세가 대단하다. 특정 장르와 뻔한 전개의 틀을 거부하는, 대담하고 초현실적인 이 영화는 칸 영화제부터 시상식 시즌 내내 독창적인 작품 세계를 구축한 ‘작가주의 감독’다운 화제성을 몰고 다닌다.
영화 ‘에밀리아 페레스’는 자유로운 춤과 노래, 과감한 영상을 통해 각자의 방식으로 자기만의 행복을 좇는 비범한 멕시코 여성 4인의 파란만장한 여정을 따라간다. 멕시코 카르텔의 두목 후안 마니타스 델 몬테(카를라 소피아 가스콘)는 별 볼 일 없는 일만 맡으며 회사에서 제대로 인정받지 못하던 변호사 리타(조이 살다냐)에게 도움을 청한다. 바로, 죽음을 위장해 ‘에밀리아 페레즈’가 되고 진정한 본연의 모습으로 살 수 있게 도와 달라는 것이다.
각본과 연출을 맡은 자크 오디아르 감독은 “싱어송라이터 카밀과 작곡가 클레망 뒤콜의 음악에 맞춰 연극적 제약에 얽매이지 않는 웅장한 규모의 영화적 기법으로 제작된, 사랑과 상실에 대한 오페라적이고 활기찬 이야기”라고 소개했다. 프랑스 작가 보리스 라존의 소설에서 영감을 받았지만 원작은 단지 출발점일 뿐이었다. 오디아르 감독은 “원작 소설 중간 성전환 수술을 원하는 마약상이 잠깐 등장한다. 이후 스토리 진행이 딱히 없었던 캐릭터였지만 그 지점에서 이야기를 시작하고 싶었다. 팬데믹 기간 동안 대본을 썼는데 그 과정에서 막의 구성이나 움직임 없는 무대, 원형적 인물들이 영화보다 오페라 대본에 더 가깝다는 것을 깨달았다. 진지하고 비극적인 주제를 노래와 춤으로 표현하는 것이 더 효과적이라 믿었다”며 오페라 뮤지컬 장르를 택한 이유를 밝혔다.
‘에밀리아 페레즈’는 세 여성이 삼각 구도를 이룬다. 타이틀 배역인 마니타스와 에밀리아는 트랜스젠더 배우 카를라 소피아 가스콘이 동시에 연기했다. 멕시코식 악센트로 노래하는 두 목소리를 멋지게 소화해낸 가스콘은 “액션 영화가 아닌 액션 영화, 드라마가 아닌 드라마, 코미디가 아닌 코미디가 있다”며 “정말 대단한 선물이고, 그 일부가 되어서 자랑스럽다. 한 마디로 경이로운 역할”이라고 밝혔다.
멕시코 카르텔 수장이 성전환 수술을 통해 신분 세탁을 하고 에밀리아 페레즈로 새 삶을 시작하는 결정은 변호사 리타(조이 살다나)와 변덕스러운 아내 제시(셀레나 고메즈)의 삶도 변화시킨다. 조이 살다나는 오디아르 감독이 제작의 많은 부분을 수정하게 만들고 1년을 기다리게 한 배우다. 리타가 부르는 ‘엘 말’(El Mal 악마)은 기금모금 파티에서 리타가 정부의 부패와 카르텔의 폭력을 고발하면서 연루된 기부자들의 테이블을 돌며 부르는 노래로 압도적인 몰입감을 선사한다. 카리스마 넘치는 연기, 뛰어난 실력의 춤과 노래로 골든 글로브 여우조연상을 수상한 그녀는 “리타는 단 한 번의 기회만 주어진다면 결코 깨뜨릴 수 없는 유리 천장을 깨고 나갈 수 있기를 소망했다. 그래서 그 기회가 찾아왔을 때 두 번 생각하지 않고 그냥 붙잡았다”며 “마치 어떤 전통적 장르에도 존재하지 않는, 누아르 영화로 설명되지만 뮤지컬이고 실제로는 오페라인 이 영화가 내게 그랬다”고 밝혔다.
삼각 구도의 마지막은 셀레나 고메즈가 연기한 제시다. 재혼하고 아이들과 함께 이사를 가려는 계획에 기뻐하는 제시가 가라오케를 연상시키는 공간에서 ‘미 카미노’(Mi Camino 내 방식대로)를 부르는 장면은 반전을 예고하는 메타적 순간으로 팝스타 셀레나 고메즈의 매력을 십분활용하고 있다. 오디아르 감독은 “어느 아침 뉴욕에서 셀레나 고메즈를 만났다. 하모니 코린 감독 영화 ‘스프링 브레이커스’(2013)에서 본 그녀를 기억했지만 그녀에 대해 거의 알지 못했다. 대화를 시작한 지 10분 만에 그녀가 바로 제시라고 생각됐다”고 확신을 보였다.
/하은선 골든글로브협회(GGA) 정회원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