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005930)가 당면한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최대 사업인 반도체 부문 사업 모델 변화도 절실하다. 그간 삼성전자는 범용 메모리에서 안정적 1위 지위를 기반으로 인공지능(AI)과 맞춤형 시장에 진입하는 전략을 써왔지만 범용 메모리에서 중국 업체들의 약진과 AI 메모리 경쟁자들의 빠른 속도전으로 인해 어려움을 겪고 있다. 범용 메모리 비중은 줄이고 고부가 맞춤형 칩 사업의 비중을 확대해야 한다는 뜻이다.
4일 업계에 따르면 반도체 시장에서 최근 표준 고대역폭메모리(HBM)가 아닌 맞춤형 HBM을 선호하는 현상은 뚜렷해지고 있다. 마이크로소프트(MS)와 구글, 테슬라와 애플 등 글로벌 빅테크들은 자사 기기·서비스에 특화된 맞춤형 AI 가속기와 플랫폼을 자체 개발하고 있기 때문이다.
대규모 데이터를 기반으로 구축하는 ‘학습’ 모델의 경우 병렬 연산(데이터를 동시에 처리)에 특화한 그래픽처리장치(GPU) 기반 AI 가속기가 적합하지만 한 분야에 특화된 ‘추론’ 모델은 다른 반도체의 사양과 기능을 필요로 한다. 최근 구글이 엔비디아 공급망에서 벗어나 자체 AI칩인 텐서프로세싱유닛(TPU) 설계를 브로드컴에 맡긴 것도 이러한 맥락이다.
업계에서는 최근 중국의 추론 AI 모델인 딥시크의 등장으로 이러한 흐름이 더욱 가속화할 것으로 보고 있다. 파운드리(반도체 수탁 생산) 세계 1위인 TSMC부터 시작해 브로드컴·마벨테크놀로지 등 반도체 설계 대행 업체, SK하이닉스 등 주요 반도체 업체들이 고객 맞춤형 칩 사업 모델 개발에 열을 올리고 있다.
삼성전자도 지난달 말 실적 발표에서 맞춤형 칩 사업을 강화하고 있다며 기술 추격에 대한 의지를 드러냈다. HBM3E까지는 SK하이닉스를 비롯한 경쟁사에 뒤처졌지만 맞춤형 칩 시대가 열리는 차세대 제품부터는 그동안 뒤진 실적을 만회한다는 전략이다.
김재준 삼성전자 메모리사업부 전략마케팅 부사장은 “HBM4와 HBM4E 기반 커스텀(맞춤형) HBM 과제도 기존 계획에 맞춰 고객사와 기술적 협의를 이어가고 있다”며 “경쟁 심화가 예상되는 레거시 D램 매출 비중은 올해 한 자릿수 수준까지 축소해나갈 예정”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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