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리츠금융그룹이 신창재 교보생명 회장의 1조 원대 자금 조달을 지원하면서 일시적으로 현금 흐름에 어려움을 겪는 기업들의 ‘구원투수’로서 입지를 굳히고 있다. 메리츠금융그룹만의 신속한 의사 결정 시스템과 과감한 리스크 테이킹 전략이 빛을 발한다는 평가다. 메리츠는 이러한 강력한 입지에다 최근 과감한 인력 보강으로 기업금융까지 강화해나갈 테세다. 주가도 1년 새 62%나 급등하며 신바람을 내고 있다.
4일 투자은행(IB) 업계에 따르면 메리츠금융과 신 회장은 1조 원 규모의 자금 지원 방안을 논의했다. 신 회장은 어피너티컨소시엄(어피너티·IMM프라이빗에쿼티·EQT파트너스·싱가포르투자청)이 보유한 교보생명 지분 24.01% 매입에 이 자금을 활용할 계획이다. 현재 EY한영을 통해 풋옵션 가격을 산정 중이며 최종적으로 정하기까지는 시간이 걸릴 것으로 전망된다.
최종 협상 결과를 봐야 하지만 신 회장이 어피너티 측에 지급할 매입 대금은 최소 1조 원에서 최대 2조 원에 달할 것으로 전망된다. 신 회장은 메리츠금융그룹에서 1조 원을 조달하고 지난 10년간 배당받은 3000억 원, 주식담보대출 등을 통해 자금을 마련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신 회장과 어피너티컨소시엄 간 풋옵션 분쟁의 발단은 2012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어피너티컨소시엄은 2012년 교보생명 지분 24%를 1조 2000억 원(주당 24만 5000원)에 인수했다. 양측은 2015년 9월까지 교보생명이 기업공개(IPO)를 하지 않을 경우 신 회장이 어피너티컨소시엄 지분을 사들이기로 계약했다. 2018년 어피너티컨소시엄은 신 회장에게 주당 41만 원(총 2조 122억 원)에 24% 지분을 매입해달라고 요청했지만 신 회장은 이를 거부했다. 이후 국제중재를 거친 끝에 신 회장이 어피너티컨소시엄의 지분을 매입하는 절차를 밟게 됐다. 다만 가격 산정을 두고 양측의 이견을 좁히는 과정이 필요하며 신 회장은 최소 1조 원은 필요한 상황이다.
메리츠금융그룹은 최근 국내 주요 기업들의 구조조정과 자금 조달을 주도해왔다. 고려아연의 1조 원 규모 사모사채를 인수했고 MBK파트너스가 보유한 홈플러스에는 1조 3000억 원 규모 인수금융 리파이낸싱을 성사시켰다. M캐피탈에는 3000억 원을, 폴라리스쉬핑 모회사인 폴라E&M에는 3300억 원 규모의 대출을 실행했다. 롯데건설에도 펀드를 통해 5000억 원 규모의 자금을 지원했다.
메리츠금융그룹의 핵심 경쟁력은 독보적인 투자심의위원회 운영에 있다. 매주 2회 열리는 투심위에는 최희문 메리츠금융지주(138040) 최고투자책임자(CIO) 부회장을 비롯해 리스크 관리 담당자와 김종민 사장 등 주요 의사결정권자들이 모두 참석한다. IB 업계 고위 관계자는 “다른 증권사들은 전무급까지만 모여 결정하고 다시 위로 보고해야 하는데 메리츠는 최고 경영진들이 한자리에서 전문성을 바탕으로 토론하고 즉시 결정한다”며 “이런 문화는 경쟁사가 쉽게 따라할 수 없는 메리츠만의 강점”이라고 설명했다. 리스크나 법무, 컴플라이언스 부서가 현업과 협의할 때 불필요한 시간이 소요되는 경우가 많은데 메리츠는 최고 경영진이 참석하는 자리에서 합리적인 논의가 이뤄져 의사 결정이 빠르다는 얘기다.
이러한 과감한 투자 결정은 메리츠금융그룹의 성장으로 이어졌다. 메리츠금융지주의 시가총액은 이날 기준 21조 5514억 원으로 시중은행을 제외한 금융지주사 중 1위다. 지난해 2월 5일 6만 9600원이던 주가는 이날 11만 3000원에 거래를 마쳤다. 시중은행을 포함할 경우 KB금융(105560)(35조 9291억 원), 신한지주(055550)(25조 6757억 원)에 이은 3위다. 그 뒤로 하나금융지주(086790)(17조 6653억 원), 우리금융지주(316140)(11조 6438억 원) 등이 있다.
한편 메리츠증권은 “현재로서는 교보생명과 관련해 공식적으로 진행되는 딜은 없다”고 밝혔다. 교보생명은 “메리츠 측에서 자금지원 제안을 받은 적이 있다”고만 설명했다.
IB 업계의 또 다른 관계자는 “메리츠금융그룹은 양질의 딜을 발굴하고 수익을 창출하는 능력이 탁월하다”며 “높은 금리를 요구한다는 지적도 있지만 위험 대비 적정 수준이며 기업금융 관련 리스크도 수익성과 손실 완충력을 고려하면 충분히 관리 가능한 것으로 안다”고 평가했다. 최근 한화그룹의 아워홈 인수 지원 가능성이 거론되는 등 메리츠금융그룹의 기업 인수금융 시장 내 영향력은 계속 확대될 것으로 전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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