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행이 지난달 기준금리를 동결한 배경에 국내 정치의 불확실성이 크게 작용한 것으로 나타났다. 한은은 1%대 저성장 우려를 제기하며 추가경정예산의 시급한 편성을 주장했지만 정작 추가적인 통화 완화 정책에는 소극적이었다. 지난달 통화정책회의에서 금통위원 다수는 정치 리스크가 경제 전망의 불확실성을 높여 금리 인하를 한 템포 늦추는 게 낫다는 판단을 한 것으로 확인됐다.
한은이 4일 공개한 ‘2025년 제1차 금융통화위원회 의사록’에 따르면 금리 동결을 주장한 A 위원은 “과거 두 차례의 탄핵 경험에 의하면 정치적 불확실성이 3~6개월 내 해소되며 경제에 미치는 영향이 제한적이었다”며 “그러나 이번에는 과거보다 경제 심리 급락의 정도가 크고 환율 등 대내외 환경이 엄중해 금리를 유지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의견을 표명했다. B 위원 역시 “현재 모든 경제 변수가 불확실성을 가리키고 있고 대외 정책 환경의 급격한 변화, 국내 정치 갈등 등 경제 외적인 요인들이 지배하는 현시점에서의 기준금리 조정은 의도하는 정책 효과를 달성하기 어렵다”고 짚었다. 지난해 11월 금통위와 달리 대내외 환경을 금리 동결의 사유로 제시한 의원도 다수였다. 금통위원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경제정책 △미 연방준비제도(Fed·연준) 통화정책 방향 △중국의 경기 둔화 우려 △한국의 일련의 정치적 사건 등을 공통적 우려 요인으로 꼽았다.
환율도 금리 동결의 주요 요인이었다. 원·달러 환율이 1400원대 후반으로 여전히 높은 상태에서 3연속 인하로 미국과의 금리 격차가 더 벌어지면 원화 가치가 떨어져 환율이 더 뛸 가능성을 우려한 것이다. C 위원은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환율 상승 등으로 1% 초반에서 2%에 근접하게 상승했고 근원물가 등 물가지표도 목표 수준에 근접했다”며 “향후 물가는 목표 수준에서 유지될 것으로 전망되지만 환율 상승으로 인한 상방 리스크 증대에 유의해야 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D 위원 역시 “금리를 인하하면 환율에 추가 부담을 주게 된다”며 “이에 따른 물가 상방 압력 높아질 수 있다”고 경계감을 드러냈다.
금통위는 앞서 지난달 16일 올해 첫 금통위를 열고 기준금리를 연 3%로 유지했다. 지난해 10월과 11월 두 번 연속 금리를 0.25%포인트씩 내린 뒤 첫 동결이다. 지난달 금통위에서 신성환 위원을 제외한 전원이 금리를 조정하지 않는 게 바람직하다고 밝혔다. 신 위원은 “트럼프 신정부의 경제정책에 대한 불확실성이 확대되고 국내 정치 상황이 불안정한 모습을 보이며 성장의 하방 리스크가 증가했다”면서 통화정책 완화가 필요한 시점이라고 짚었다. 그러면서 “올해 성장률 또한 정치적 불안정성 확대로 인해 수출이 반도체를 중심으로 예상 밖의 호조세를 보이거나 확장적 재정정책이 시행되는 경우가 아니라면 당초 전망 대비 부진할 가능성이 높아졌다”고 덧붙였다. 신 위원뿐 아니라 동결에 표를 던진 5명의 위원도 모두 경기 부양을 위한 금리 인하 필요성에는 공감했다. A 위원은 “물가 상승률이 안정적 흐름을 이어가는 가운데 대내외 요인으로 성장의 하방 리스크가 커지면서 기준금리 인하 필요성도 증대됐다”고 진단했고 B 위원은 “미약한 내수 회복과 실물 부문의 지표 부진을 고려할 때 추가 금리 인하를 고려할 상황”이라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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