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애나 만들기’로 국내에 잘 알려진 실존 인물 애나 소로킨의 실화를 다룬 연극 ‘애나 엑스’가 배우들의 호연과 흥미로운 무대 연출로 호평을 받고 있다.
5일 LG아트센터 서울에서 열린 ‘애나엑스’ 프레스콜에서 이재은 연출은 “이 작품은 애나 소로킨이라는 현실의 범죄자를 평가하는 작품이 아니고 그 사람으로 상징되는 우리의 삶을 다룬다”며 작품에 대해 설명했다. 그는 “한 사람의 인간으로서 우리가 모두 겪고 있는 삶의 단편을 주시하면서 작품을 만들고자 했다”고 말했다.
4일 개막한 ‘애나엑스’는 디지털 기술의 발전과 함께 정체성을 더 쉽게 꾸며내고 조작할 수 있는 사회 현상을 중심으로 사람들이 자신을 어떻게 포장하고 이를 통해 어떤 영향을 받는지 탐구한다. 애나 역에는 최연우, 한지은, 김도연이, 아리엘 역에는 이상엽, 이현우, 원태민이 열연한다
100분간 무대 위에는 애나와 아리엘 역을 맡은 2명의 배우만 등장한다. 1막은 허세와 허풍으로 사람들의 이목을 집중시키는 데 성공한 애나와 사업에 성공해 거침없이 달려 나가는 아리엘의 이야기로 시작한다. 애나는 자신을 부유한 상속녀로 소개하며 뉴욕 상류층 사이에서 인지도를 넓힌다. 하지만 사실 그는 가짜 상속녀로,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사기 행각을 벌이는 캐릭터다. 두 사람은 사랑에 빠지는 듯하지만 사실 그 사랑은 허상이다. 초고속으로 성장하며 대세가 된 아리엘의 회사는 결국 밝혀진 애나의 사기극으로 한순간에 한물 간 회사가 됐다. 마치 애나의 인생처럼 말이다.
이미 결론이 알려져 있지만 연극으로 다시 만들어진 작품에서는 눈 여겨볼 만한 점이 많다. 우선 주인공 애나가 방백에서 쉼 없이 스스로를 ‘너(YOU)’라는 2인칭으로 지칭하는 독특한 화법이 흥미롭다. 번역을 맡은 황석희는 이날 프레스콜에서 “애나가 자신을 ‘너’라고 지칭하는 이유는 자신과 자신이 창조한 인물을 떼어내 생각하는 것”이라며 “이는 관객들로 하여금 사실과 인지 사이 경계를 흐릿하게 하는 효과를 발휘하고 어디까지가 진실인지 끝날 때까지 고민하게 한다”고 말했다.
스마트폰을 형상화한 무대 디자인도 눈길을 끈다. 작품에서 휴대폰, SNS는 주인공 애나의 정체성을 결정하는 중요 요인이다. 따라서 연출은 무대 자체를 극 중 인물들의 내면을 시각적으로 전달하는 주요 장치로 활용하는데 이는 마치 두 사람이 주고 받는 문자 메시지 속에 관객이 들어가 있는 듯한 착각을 불러 일으킨다. 등장 인물의 감정은 극도로 절제돼 있지만 관객들은 두 사람이 주고받는 문자 메시지를 쉼 없이 볼 수 있어 애나의 공허함에 공감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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