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에는 천당이 있고 땅에는 쑤저우와 항저우가 있다(上有天堂 下有蘇杭).’
중국 저장성의 성도인 항저우는 예로부터 빼어난 경치를 바탕으로 중국 사람들이 가장 살고 싶은 도시 중 하나로 꼽힌다. 지금은 첨단산업의 전진기지로 떠올라 더욱 주목을 끌고 있다. 전 세계를 깜짝 놀라게 한 인공지능(AI) 모델 딥시크를 포함해 유니트리·딥로보틱스·브레인코 등 일명 ‘6룡’이 이곳에서 중국의 미래 산업을 이끌고 있다.
항저우는 어떻게 첨단산업의 전진기지로 떠올랐으며 항저우 소재 대학을 나온 청년들이 세계적인 기업을 만들어낸 비결은 뭘까. 최근에야 주목받고 있지만 항저우는 중국 내에서는 산학 연계를 토대로 가파르게 성장한 도시로 정평이 나 있다. 중국 최고 정보기술(IT) 기업 반열에 오른 알리바바를 중심으로 테크 기업들이 이끌고 저장대·저장이공대 등이 기술 인재를 키워내고 있다. 항저우는 2018년 발간된 ‘중국 스마트시티 백서’에서 중국 335개 도시 중에 인터넷과 사회 서비스 지수가 가장 높은 스마트시티로 꼽히기도 했다.
기자가 2019년 항저우 저장대로 해외 연수를 갔던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당시만 해도 저장대의 인지도가 낮았던 터라 다들 의아하게 생각했다. 중국을 대표하는 도시인 베이징이나 상하이가 아닌 왜 항저우냐는 이유에서다. 기자가 1년간 머물렀던 저장대 위취안 캠퍼스는 최근 주목받는 이공계 인재들이 공부하는 공대가 위치해 있다. 간혹 농구장에서 같이 땀을 흘렸던 중국인 학생 상당수는 청년 사업가로의 의욕에 가득 찬 모습이었다. 아침부터 교내 식당에서 책을 들고 한 손으로 밥을 먹는 그들로부터 “마윈처럼 훌륭한 기업가가 되겠다”는 말을 여러 번 들었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다. 당시에도 저장대 기숙사는 자정을 넘긴 시간까지 대부분 환하게 불이 켜져 있었다.
전국 각지에서 수재 소리를 듣던 그들이 의대가 아닌 이공계를 선택한 배경에는 미래에 대한 꿈과 희망이 자리 잡고 있다. 여기에는 중국이 우리나라보다 의사 대우가 신통치 않은 탓도 있다. 이공계를 나와 취업하면 연봉이 훨씬 높다. 또한 창업을 한 뒤 실패한다고 해도 두려움은 크지 않다. 사업에 실패하면 본인은 물론 가족까지 빚더미에 빠져 재기 불능에 빠진다는 두려움에 사로잡힌 우리나라와는 천양지차다. 텐센트·알리바바 같은 빅테크의 적극적인 투자를 받아 유니콘으로 성장한 스타트업도 수두룩하다. 알리바바로부터 연봉 1000만 위안(약 20억 원) 제안을 받은 딥시크의 ‘천재 소녀’ 뤄푸리처럼 인재에 대한 금전적 보상 역시 확실하다.
첨단산업을 적극적으로 육성하는 중국 당국의 계획에 따라 인재를 키우는 대학의 지원 역시 제2, 제3의 딥시크 출현을 기대하게 만든다. 중국 정부는 5년마다 5개년 계획을 세워 명확한 방향을 제시하고 일관된 정책 지원에 나선다. 중국 전역에서 4000개 넘는 AI 기업들이 경쟁하며 성장하는 것은 정부의 적극적인 정책 덕이라는 진단이 나오는 배경이다.
눈에 띄는 점은 대학들이 인재 선발과 교육 과정의 자율권을 쥐고 글로벌 인재를 키워내고 있다는 사실이다. 평준화만 강조하는 교육 환경에서 인재 선발 자율권 요구조차 못하는 국내 대학 현실과는 대조적이다. 더구나 우리나라는 5년마다 새 정부가 들어서면서 이전 정부의 정책을 뒤집는 경우가 허다하다. 이미 문재인 정부의 탈원전 정책으로 원자력 관련 학과에서 자퇴생이 쏟아지며 생태계 자체가 무너졌던 뼈아픈 경험이 있다. 이런 환경에서 우리나라 수재들이 왜 의대에만 쏠리냐고 이기적이라 손가락질만 할 수는 없다. 전 세계를 뒤흔든 ‘딥시크 쇼크’를 계기로 한국의 인재 육성 시스템을 전면적으로 뜯어고쳐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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