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2월 계엄 사태 이후 한국 자본시장에 몰아친 후폭풍이 두 달 넘게 이어지고 있다. 해외 큰손들의 저가 매수세가 뚜렷했던 물류센터 시장에서 최근 투자가 상당수 중단되고 있는 게 단적인 사례로 거론된다. 특히 기업공개(IPO) 시장과 코스피 등 상장주식 시장에서도 글로벌 기관들의 투심은 여전히 차갑게 식어 있다.
10일 투자은행(IB) 업계에 따르면 최근 싱가포르투자청(GIC)은 쿠팡이 임차하는 국내 한 물류센터 투자를 잠정 중단하기로 했다. 캐나다계 브룩필드자산운용도 지난해부터 추진 중이던 인천의 한 대형 물류센터 인수에 속도를 내지 못하고 있다.
IB 업계 관계자는 “한국에 진출한 글로벌 기관 중 다수는 아시아태평양 본부나 글로벌 본사에서 투자 승인을 얻어내야 자금 집행을 할 수 있는 구조”라면서 “해외 본사에서 한국의 정치 불확실성을 우려하는 분위기가 커 아시아 다른 국가로 일단 투자처를 돌리려는 경향이 뚜렷하다”고 말했다.
GIC는 물류센터 등 국내 부동산 시장에 가장 많은 자금을 투입한 해외 큰손으로 꼽힌다. 컬리어스에 따르면 GIC가 현재 국내 물류센터 프로젝트에 투자해둔 자금은 총 3조 1530억 원, 25건에 달한다.
GIC는 특히 지난해부터는 국내 부동산 개발 시장에서 공매로 나온 자산이나 부실채권(NPL) 등을 저렴한 가격에 속속 매입해왔다. 저금리 시대를 타고 과잉 양상으로 치닫던 한국 물류센터 등의 개발 자산들이 브리지론·프로젝트파이낸싱(PF) 단계에서 잇따라 좌초하면서다. NPL화된 자산들을 두고 해외 큰손들은 저가 매수 기회라고 인식하며 투자를 서둘렀다.
실제 GIC를 비롯한 전문 기관들은 국내 각 분야의 전문 운용사들이 조성한 펀드에 잇따라 투자 약정을 체결하고 자금 집행을 맡겨왔다. 그러나 지난해 말 계엄 사태 이후부터는 해당 펀드의 투자 집행을 잠시 중단해달라고 운용사들에 잇따라 요청한 상태다.
콜버그크래비스로버츠(KKR)가 2년여간의 준비 과정을 거쳐 지난해 하반기 국내에 설립을 완료한 대체투자 전문 크리에이트자산운용 역시 아직까지 한국에서 첫 투자를 집행하지 못하고 있다. 한 사모펀드 운용사 대표는 “해외에서는 한국 대통령의 탄핵 인용, 대선 여부 등 불확실한 측면이 많아 자산 시장도 영향을 받을 수 있다고 우려한다”며 “일본이나 호주 같은 대체 지역도 많기 때문에 한국 투자는 잠시 보류해도 된다고 판단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 밖에 블랙스톤 등 한국 부동산·인프라 시장에서 꾸준히 투자 기회를 찾던 글로벌 기관들의 투자 시계도 계엄 파장 이후 상당 기간 멈춰 있다는 말들이 흘러나온다. 컬리어스코리아는 최근 보고서에서 “탄핵 정국에 따른 정치 불확실성이 기업의 투자 활동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치고 있다”면서 “임대차 신규 수요 감소와 더불어 기업 구조조정에 따른 임차인 이동의 여파가 2025년 임대차 시장에 계속 영향을 끼칠 것”이라고 전망했다.
기업 자금 조달처의 핵심으로 꼽히는 기업공개(IPO) 시장에서도 해외 기관들의 투자는 한산한 모습이다. 올해 코스피 IPO 최대어로 꼽혔던 LG CNS는 올 초 기관 수요예측에서 해외 투자자들로부터 싸늘한 반응을 확인해야만 했다. 당시 국내외 기관투자가 2059곳이 수요예측에 참여해 114대1의 경쟁률이 나오는 등 선방했으나 외국인들의 수요예측 참여율은 약 3%에 그쳤다. 케이뱅크는 정치적 불확실성으로 해외 기업설명회(NDR)도 제대로 갖지 못하면서 상장 계획을 일단 접어야만 했다.
해외 큰손들의 한국 시장을 향한 싸늘한 투심은 상장 주식 시장에도 여전히 남아 있다는 평가가 많다.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지난해 12월 3일 계엄 이후 외국인들은 코스피 시장에서 13거래일 연속 순매도하는 등 12월 말까지 3조 4710억 원어치를 팔아 치웠다. 이날까지 누적 기준 순매도 금액도 5조 3000억 원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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