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가경정예산 편성의 최대 걸림돌은 재정 건전성이다. 이미 나라가 벌어들이는 돈보다 씀씀이가 더 큰 상황에서 또다시 뭉칫돈을 쓰겠다고 돈을 빌려야(적자국채 발행)하는 처지이기 때문이다.
겉으로 나타나는 건전성 지표만 보면 우리나라는 비교적 곳간이 튼튼한 나라로 볼 수 있다. 2024년 기준 한국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국가채무 비율은 47.4%로 주요 선진국인 미국(123.3%), 일본(263.9%), 영국(104.3%)과 비교해 낮은 편이다.
문제는 무리한 적자국채 발행이 이어질 경우 환율과 금리·물가 등이 동시다발적으로 흔들릴 수 있다는 점이다. 가령 우리나라가 감당하기 어려운 수준의 국채 발행이 결정될 경우 국채 발행 금리가 뛰면서 원·달러 환율이 상승(원화 가치 하락)하고 물가까지 자극하는 최악의 결과가 나타날 수도 있다. 재정지출을 통한 경기 부양도 좋지만 최적의 발행 규모를 먼저 산출해야 한다는 조언이 나오는 이유다.
이인호 서울대 경제학과 교수는 “지금 민생 회복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부분이 있을 텐데 거기에 들어가야 되는 돈이 얼마인지를 잘 계산해서 쓰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면서 “30조 원 쓰고 60조 원 벌어들이는 방식으로 접근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재정을 지출해야 한다면 효과를 최대화해야 한다는 뜻이다.
이에 따라 정부 재정정책과 한국은행의 통화정책이 시너지를 내는 ‘폴리시 믹스’가 필요하다는 분석도 나온다. 추경 편성을 통한 심리 회복 및 소비 자극이 통화 당국의 금리 인하와 시기적으로 맞물려야 최고의 효과를 낼 수 있다는 얘기다. 이창용 한은 총재는 최근 “2월 금융통화위원회에서 반드시 금리를 내려야 하는 상황은 아니라고 본다”며 경기 부양을 위한 추경 편성을 다시 한 번 우회적으로 촉구했다.
전문가들은 또한 1인당 20만~25만 원씩 지급하는 단기적 현금성 지원보다는 R&D 투자나 반도체·배터리 등 신성장 산업 지원에 대규모 공적 자금을 투입할 경우 추경 효과가 극대화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정부가 추진하는 한국형 공급망 강화 정책과 연계해 추경이 활용된다면 트럼프 시대를 맞아 글로벌 경제 불확실성이 큰 시점에서도 지속적인 성장 동력을 확보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하준경 한양대 경제학부 교수는 “지난해 예산을 편성할 때보다 소비가 크게 위축돼 추경의 필요성이 상당히 크다"고 말했다.
재정적자 확대에 따른 부작용을 관리하는 것도 중요하다. 특히 국가신용등급을 철저히 관리해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경제 부처의 한 관계자는 “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 국제 신용평가기관들이 한국에 대해 우호적인 평가를 내려왔던 이유 중에는 재정 건전성에 대한 믿음이 있었던 게 사실”이라고 설명했다. 실제 글로벌 3대 신평사인 피치는 최근 트럼프 쇼크와 같은 변동성 확대 국면에서도 한국의 국가 신용등급(AA-)과 등급 전망(안정적)은 유지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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