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수입되는 모든 철강 제품에 25% 관세 부과를 예고하면서 국내 철강 업계는 초비상이 걸렸다. 특히 트럼프 정부가 현행 철강 수출 쿼터를 축소 또는 폐지하면서 25%의 관세를 부과하면 대미 철강 수출은 사실상 전면 중단될 것으로 우려했다. 가까스로 철강 쿼터제를 일단 사수하더라도 25%의 관세가 실행되면 풍선 효과로 인해 전 세계 철강 업체들의 경쟁이 과열되며 포스코와 현대제철(004020) 등의 수출 위축과 수익성 하락은 불가피할 것으로 전망된다.
“쿼터제 축소·폐지시 대미 철강 수출 중단”
철강 업계가 가장 우려하는 것은 쿼터제다. 트럼프 대통령은 1기 집권 기간인 2018년 외국산 철강에 25%를 부과했는데 우리나라는 협상을 통해 매년 263만 톤까지는 무관세로 미국에 수출할 수 있는 쿼터제에 합의했다. 263만 톤은 2015~2017년 평균 수출량의 70% 수준이다. 관세를 피하는 대신 대미 수출량이 줄어드는 손해를 감수한 것이다. 미국은 한국과 일본, 유럽연합(EU) 등을 상대로 철강 쿼터제를 시행하고 있다. 한국은 263만 톤을 넘어서는 물량을 미국에 수출할 수 없고 미국에서 생산하기 어려운 제품이라고 인정 받은 경우에만 추가 수출이 가능하다.
업계는 미국이 기존 할당량을 줄이거나 아예 쿼터제를 폐지할 경우 타격이 엄청날 것으로 우려해 정부에 수출 쿼터 유지를 최우선적으로 고려해줄 것을 꾸준히 요청해왔다. 지난달 트럼프 대통령 취임 이후 산업통상자원부가 주재한 철강 업계 간담회에서도 기업들은 수출 쿼터 유지를 건의했다. 미국은 한국 철강 수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물량 기준으로 3위(9.8%), 금액 기준으로는 6조 3000억 원에 달해 1위(12.4%)일 만큼 핵심 시장이기 때문이다. 지난해 한국의 대(對) 미국 철강 수출량은 280만 9000톤으로 캐나다(655만 7000톤), 브라질(449만 8000톤), 멕시코(351만 7000톤)에 이어 4위를 기록했다.
철강 업계 관계자는 “미국이 관세 부과에 이어 수출 물량까지 건드리면 그나마 철강사들이 돈을 벌던 수출에서도 큰 타격을 입을 수밖에 없다”며 “실제 관세가 부과되면 손해를 보고 수출해야 하기 때문에 쿼터 물량 이외 철강재의 미국 수출은 사실상 불가능해진다”고 했다.
쿼터제 유지해도 글로벌 철강 지각변동…풍선효과 우려
쿼터제가 유지되더라도 25%라는 관세율이 지나치게 높아 글로벌 철강 산업이 요동치며 국내 기업들이 피해를 볼 가능성도 여전하다. 철강 업계의 바람대로 트럼프 대통령이 언급한 과세 부과가 중국 등 비(非)쿼터 국가를 상대로만 시행된다고 하더라도 25% 관세 부과가 시행되면 상당한 피해가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미국의 관세 부과가 실행되면 줄어든 대미 수출 물량이 다른 나라들로 유입되며 철강재의 가격을 떨어뜨릴 수밖에 없다. 이미 국내 철강사는 중국산 후판과 열연, 일본산 열연 등 저가 철강재가 물밀 듯 유입되며 수익성이 크게 악화됐는데 수출처를 잃은 캐나다·브라질산 철강재가 추가로 시장에 풀리면 추가 타격이 불가피하다. 국내 조강(쇳물) 생산량은 2021년 7042만 톤에서 지난해 6351만 톤으로 700만 톤가량 줄어들었다. 그만큼 철강의 수요가 줄어들었다는 의미다.
한 철강 업계 관계자는 “한국을 겨냥하지 않았더라도 트럼프 대통령의 관세 부과 조치가 어떤 형태로든 시행되면 국내 업체들은 피해를 볼 수밖에 없다”며 “중국이 밀어내기식으로 저가 철강재를 쏟아내며 철강사들의 수익성이 개선될 조짐조차 보이지 않고 있는데 미국마저 무역장벽을 높이면 국내 철강 산업의 경쟁력은 크게 후퇴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트럼프 대통령이 철강 관세를 실제 실행하면 자동차·가전 등 국내 연관 산업 역시 피해를 볼 수밖에 없다. 미국에 수입되는 철강 제품 가격이 관세 부과로 치솟으면 미국에서 자동차와 가전제품 등을 생산하는 현대차(005380)·기아(000270), 삼성·LG전자 등의 원자재 비용 부담은 높아지게 된다. 특히 자동차 업계는 미국이 멕시코에도 관세 부과를 추진 중이어서 트럼프의 관세를 피할 길은 더욱 좁아진다.
트럼프의 US스틸 살리기…韓 기업 美 진출도 ‘글쎄’
이에 국내 철강사들이 미국 안에 제철소를 짓는 계획을 적극 검토하고 있다. 현대제철은 10조 원 이상의 자금을 투자해 자동차용 강판을 생산하는 공장을 짓는 안을 추진하고 있다. 포스코 역시 합작법인 등의 형태로 미국 현지 생산 방안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통상정책 불확실성을 최소화하기 위해서다.
하지만 철강사들의 투자 여력이 줄어들고 있다는 점은 부담이다. 제철소를 짓는 데 최소 수조 원의 자금이 필요하지만 철강 업계의 불황이 깊어지며 수익성이 이미 크게 하락했기 때문이다. 포스코홀딩스는 경우 지난해 3분기 기준 현금·현금성자산은 7조 7289억 원으로 유동성은 확보해 둔 상태다. 하지만 지난해 영업이익은 2조 1740억 원으로 1년 전보다 38.4% 하락했다. 현대제철 역시 1년 전보다 60.6% 급락한 3144억 원의 영업이익을 지난해 기록했다. 현 시점에 제철소를 짓는다고 해도 2030년은 돼야 가동에 들어갈 수 있어 당장의 타격은 불가피하다.
특히 트럼프 정부가 철강 관세를 부과하는 이유가 US스틸 부활이라 미국 제철소 건설 프로젝트가 가로막힐 가능성도 제기된다. 트럼프 대통령이 미국에 수입되는 철강뿐 아니라 내수 물량까지 최대한 US스틸 등 자국 철강사로 돌리기 위해 애를 쓰고 있는 형국이기 때문이다.
트럼프 대통령의 ‘모든 수입 철강 제품에 25%의 관세를 부과하겠다’는 발언 역시 일본제철의 US스틸 인수 관련 질문에 답변하는 과정에서 나온 것이라는 점이 이를 대변한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US스틸이 미국의 위대한 기업이었지만 나쁜 정부와 경영 때문에 쇠락했다”면서 이번 관세 부과가 US스틸을 위한 정책이라는 것을 강조했다.
철강 업계의 한 관계자는 “트럼프 대통령은 1기 때 철강 관세 부과 결과를 스스로 높게 평가하고 있어 이를 더욱 부각시키려는 의도로 읽힌다”며 “2018년에는 미국 내수 철강 가격이 오르며 오히려 수출 가격이 올라가는 단기 효과를 보긴 했지만 이듬해 다시 큰 폭으로 하락한 적이 있어 미국 철강 가격의 방향성을 꾸준히 살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