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AI) 열풍과 리쇼어링에 힘입어 지난해 북미 지역 반도체 매출이 급증하며 전 세계 1위를 기록한 것으로 나타났다. 대만·중국 등 중화권과 한국 등 아시아태평양 지역 매출을 넘어선 것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반도체 관세 도입을 예고한 가운데 미국 내 파운드리(반도체 위탁 생산) 가동이 활성화되면 향후 반도체 시장에서 북미가 독주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12일 서울경제신문이 미 반도체산업협회(SIA) 매출 통계를 분석한 결과 지난해 글로벌 반도체 매출은 6173억 달러(약 897조 원)로 1년 전보다 18.8% 늘었다. 이 기간 북미 매출은 41.4%나 폭증한 1860억 달러(약 270조 원)를 기록했다. 같은 기간 대만·중국은 1819억 달러(약 264조 원)로 19.8% 늘었고 일본을 제외한 한국 등 아시아태평양은 1513억 달러(약 220조 원)로 13.2% 증가했다. 유럽은 516억 달러(약 75조 원), 일본은 463억 달러(약 67조 원)로 연 매출이 각각 7.5%, 1.1% 줄어 부진을 이어갔다.
2023년 대만·중국, 아시아태평양 지역에 이어 매출 기준 3위에 머물던 북미가 폭발적인 성장을 거두며 글로벌 반도체 매출 1위 지역으로 올라선 것이다. 엔비디아와 AMD를 위시한 AI 관련 수요 폭증이 북미 매출 증가를 견인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고대역폭메모리(HBM) 분야에서 선전한 마이크론과 저전력 칩셋으로 데이터센터까지 영역을 확장 중인 퀄컴 등 암(ARM) 진영도 힘을 보탰다. SIA는 “지난해 글로벌 반도체 시장에서 논리(로직) 회로가 매출 2126억 달러를 기록해 1위를 기록했다”며 “메모리 매출도 전년 대비 78.9% 급증한 1651억 달러로 나타났다”고 전했다.
북미 반도체 시장은 당분간 강세를 이어갈 것으로 전망된다. 그래픽처리장치(GPU)와 중앙처리장치(CPU) 설계 등에서 북미가 패권을 쥐고 있는 데다 파운드리에서도 미국 내 투자가 급증하고 있어서다. 실제 반도체지원법(칩스법)에 따라 미국 애리조나 파운드리를 건설한 TSMC는 올해부터 본격적인 생산에 돌입한다. 거액을 투자해 파운드리 복귀에 나선 인텔도 연말부터 성과가 기대된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역시 각각 텍사스와 인디애나주에 파운드리·패키징 공장을 신설 중이다. SIA는 2032년까지 미국 내 반도체 제조 용량이 3배 늘어날 것으로 예상했다. 트럼프 행정부가 예고한 대로 반도체 관세를 도입한다면 미국으로의 생산 거점 이동은 가속화할 것으로 전망된다. 전날 트럼프는 철강과 알루미늄에 대한 25% 관세 부과 계획을 밝히며 자동차와 반도체 부문의 관세를 검토하고 있다고 전했다. 이 경우 대만·중국과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태평양 지역 반도체 매출은 타격이 불가피하다. 지난해 한국의 대미 반도체 수출은 107억 달러에 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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