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거래위원회가 국내 4대 은행의 ‘주택담보인정비율(LTV) 담합 의혹’을 다시 살펴보겠다며 신한은행과 우리은행에 대한 현장 조사에 12일 착수했다. 나머지 2대 은행인 KB국민은행과 하나은행에 대한 현장 조사도 순차적으로 진행될 것으로 전망된다. 공정위 조사에 성실히 응하겠다는 게 시중은행의 공식 입장이지만 속내는 다르다. 내부적으로는 “해도 해도 너무한 것 아니냐”는 불만의 목소리가 크다. 금융계의 한 고위 관계자는 “공정위나 국세청 같은 힘센 기관이 사무실을 뒤집어엎기 시작하면 관련 부서 임직원들은 하루 종일 손을 놓고 처분만 기다려야 한다”며 “똑같은 사안을 몇 번씩 중복 조사하는 것 자체가 이미 비효율 아니냐”고 말했다.
공정위와 시중은행의 갈등은 2년 전인 2023년 2월부터 시작됐다. 당시 공정위는 시중은행들이 LTV 정보를 공유하면서 담합을 했다고 규정하고 조사를 벌인 뒤 2024년 1월 심사보고서를 각 은행에 발송했다. 이 사건은 2020년 공정거래법 개정에 따라 신설된 ‘정보교환담합’이 첫 적용된 사례여서 금융시장의 이목이 집중됐다.
문제는 지난해 11월 사건 재판정 격인 공정위 전원회의에서 심판관들이 검찰 역할을 하는 공정위 사무처에 사실관계를 추가로 확인하라는 지시를 내리면서부터다. 공정위 조사에 부실한 점이 있었다는 얘기다. 당시 4대 은행 측은 단순히 담보대출의 리스크 관리 차원에서 정보를 교환한 것이고 경쟁을 제한하려는 목적이 아니었다고 주장했다. 4대 은행을 변론하는 로펌들도 전원회의에서 “아파트와 같은 우량 담보물에 대출 한도를 높게 잡는 것이 이익인 만큼 LTV 비율을 낮추는 식의 담합으로 은행이 이익을 볼 수 없다”는 점을 강조했다. 특히 이 과정에서 일부 은행은 공정위 심사관의 조사 과정에서의 절차적 하자도 지적했다.
그런데도 공정위가 이번에 현장 조사를 추가로 강행한 것은 제재 결론을 미리 정해 놓은 ‘끼워맞추기 조사’란 지적을 피하기 어렵다. 2016년 양도성예금증서(CD) 금리 담합 조사에서도 비슷한 양상을 보였다. 당시 공정위는 은행들이 CD 금리를 담합했다고 판단해 4년에 걸쳐 조사를 벌였지만 빈약한 논리와 부족한 증거에 부딪혀 최종적으로 무혐의로 결론이 났다. 이번 LTV 담합 조사 역시 같은 전철을 밟을 가능성이 크다.
공정위는 추가 현장 조사를 통해 혐의가 확인되면 심사보고서를 또다시 발송해서 전원회의에 재상정하는 절차를 거쳐야 한다. 이 경우 전원회의 재상정까지 최소 6개월에서 최대 1년이 넘게 걸려 전체 조사 기간만 3년이 걸리게 된다. 이로 인한 4대 은행의 인력과 비용 낭비는 불가피하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검찰이 불기소 권고에도 불구하고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을 기소했지만 1,2심에서 무죄가 나왔는데 공정위도 이걸 그대로 답습하겠다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
그동안 공정위가 기업 경영을 위축시킨다는 비판은 꾸준히 제기돼왔다. 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 추진했던 플랫폼법 제정도 결국에는 기업의 강한 반발과 우려 속에서 무산된 바 있다. 이 법은 정부 내부에서조차 제대로 조율이 되지 않은 채로 무리하게 추진돼 시장의 혼란만 키웠다. 제이미슨 그리어 미국 무역대표부(USTR) 지명자는 최근 한국의 플랫폼법을 콕 집어 우려의 목소리를 내기도 했다. 미국의 통상 압박과 싸워야 하는 민간 기업들이 정부 족쇄를 발목에 차고 있는 셈이다. 이 때문에 전문가들은 공정위가 규제 일변도의 공세에서 벗어나 제2의 기능을 고민해야 할 때라고 지적한다. 공정거래법에 명시된 “자유로운 경쟁을 촉진해 창의적인 기업 활동을 조성한다”는 문구를 곱씹어봐야 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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