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력한 토종 인공지능(AI) 반도체 유니콘이 될 것으로 기대를 모았던 퓨리오사AI가 국내 투자자를 찾지 못한 채 글로벌 빅테크의 품에 안기게 된 상황에서 국내 AI 스타트업이 처한 현실을 들여다보면 향후 국내 AI 생태계에 대한 우려가 더욱 커진다. 유니콘으로 꼽힐 만한 기업들은 사라지고 투자 유치가 힘들어지자 저마다 가장 핵심인 인력부터 줄이고 있다. 한때 생성형 AI 붐 이후 투자가 집중됐던 국내 AI 생태계가 글로벌 빅테크의 전방위 공습으로 뚜렷한 위축세로 돌아섰다는 진단이다.
12일 서울경제신문이 스타트업 성장 플랫폼 혁신의숲에서 AI·딥테크·블록체인 비상장사 중 누적 투자 금액 상위 50개 기업의 고용 인원을 분석한 결과 지난해 11월 기준 전년 같은 기간 대비 고용 인원이 감소한 곳은 이 중 44%에 해당하는 22개 기업으로 집계됐다. 이 중 AI 기술 기업은 40%에 달하는 9곳으로 나타났다. 이들 중 상당수는 2023년 이후 투자 유치 없이 ‘보릿고개’를 버티는 상황이다.
고용 인원 추이를 보면 AI 기업의 경우 AI 영상 검색 솔루션 기업 트웰브랩스가 전년 대비 39% 증가해 인원이 가장 많이 늘었고 AI 기반 클라우드 최적화 기업인 오케스트로가 35%로 뒤를 이었다. 반면 인원이 오히려 줄어든 곳은 하락 규모도 뚜렷하게 컸다. AI 기반 풀필먼트 기업인 파스토는 직원 수가 1년 새 46% 줄었고 산업용 AI 기업 원프레딕트(-45.7%), AI 에듀테크 기업 뤼이드(-45.1%), AI 안전관리 솔루션 엘텍코리아(-41%) 순으로 극적인 감소세를 보였다.
고용 인원 추이는 기업의 활력을 나타내는 핵심 지표로 꼽힌다. 기업이 투자를 유치하고 매출이 늘면 내부 투자로 눈을 돌리는데 가장 먼저 이뤄지는 것이 인력 확보이기 때문이다. AI 기술 기업의 경우 AI로 인한 생산성 향상으로 일부 인원을 줄일 수 있지만 이 같은 극적인 감소세를 설명하기는 어렵다는 게 투자 업계의 진단이다. 한 벤처 투자자는 “그간은 높아진 밸류에이션 문제를 두고 AI 기업 투자가 주춤한 경향이 있었으나 이제는 상황이 다르다”며 “AI 기술의 경우 국가와 언어적 장벽이 거의 사라져 국내 업체가 가질 수 있는 차별화 요소를 찾을 수 없고 빅테크 기업들의 서비스가 실시간으로 한국 시장을 점령하다 보니 비교 우위가 거의 없다”고 평가했다.
이렇다 보니 국내 AI 생태계는 글로벌 AI 생태계와는 다른 길을 걷고 있다. 글로벌 시장조사 기관 CB인사이츠가 지난해 9월 조사한 상위 100개 유니콘 기업 중 21곳이 AI 기술·서비스 기업으로 조사됐다. 반면 우리나라의 경우는 AI 기업이 유니콘으로 성장하기 점점 어려운 구조다. 최근 2년간 유니콘으로 등극한 기업 가운데 AI 기업은 없다. 업계가 투자를 꺼리는 데는 실패의 데이터가 쌓인다는 점도 한몫하고 있다. 2023년 이후 AI 기업들의 국내 코스닥 시장 상장이 우후죽순 이뤄졌으나 개장 첫날부터 공모가보다 하락 출발하는 경우가 대다수이다 보니 당장 ‘상장=투자 회수’의 공식도 사라졌다. 특히 시리즈C 이상을 유치한 AI 기업의 경우 기업공개(IPO) 이전 투자에 해당하는 프리 IPO 투자도 최근 2년간 자취를 감췄다.
상대적으로 고용 인원이 늘어나는 분야는 ‘피지컬 AI’의 주축으로 꼽히는 로보틱스·자율주행·반도체 분야다. 고용 인원 증가 폭이 평균을 상회한 23개 기업 가운데 이들 분야의 기업은 16곳으로 70%에 달했다. 가장 높은 증가율을 보인 기업 상위 5곳 중 4곳은 반도체 분야가 차지했다. 파네시아(136%)가 가장 높았고 메티스엑스(85%), 딥엑스(54%), 리벨리온(41%) 순이다. 다만 이들 분야에 대해서도 업계는 아직 조심스러운 시각을 보이고 있다. 한 벤처 투자 업계 관계자는 “AI반도체도 제품으로 인한 실질적인 판매가 나타날 때까지는 지켜봐야 한다”며 “로봇과 자율주행은 세계적인 흐름이 좋지만 중국 등 타국 대비 경쟁력에 대해서는 명쾌한 해답을 찾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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