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내 물가 상승 경고음이 다시 커지면서 한국은행의 통화정책 운신의 폭도 좁아지게 됐다. 국내 경기 상황만 보면 기준금리를 인하해도 전혀 이상하지 않지만 미국이 인플레이션 우려로 금리 인하 속도를 조절할 경우 한미 기준금리 차이가 더 벌어져 원·달러 환율 인상 등의 부작용이 우려되기 때문이다.
그동안 시장은 한은이 이달 25일 금융통화위원회에서 기준금리를 낮출 가능성이 높다고 봤다. 최근 국내외 주요 기관이 올해 우리나라 경제성장률을 1% 중반대로 예측하고 도널드 트럼프발(發) 통상 분쟁이 격화될 경우 1% 초반대까지 떨어질 수도 있다고 전망하면서 내수 활성화를 위해 한은이 칼을 빼 들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컸다.
하지만 미국의 1월 소비자물가지수(CPI) 발표 이후 미 통화정책이 ‘매파적(긴축)’ 기조를 더 강화할 가능성이 높아지면서 한은에 변수가 생겼다.
실제로 국책연구기관인 한국개발연구원(KDI)이 제시한 대로 한은이 연내 2~3회 금리를 인하하고 미국은 인플레이션 등을 고려해 동결할 경우 두 나라 간 금리 차는 현재 1.5%포인트에서 최대 2.5%포인트까지 벌어져 역대 최대 폭이 될 수 있다. 이는 외국인 투자 자금 이탈로 이어져 원·달러 환율 상승을 부채질할 수 있다.
누적된 고환율에 따른 강달러 여파로 국내 물가 상승에 대한 불안이 커지고 있는 점도 한은의 금리 결정에 변수다. 지난달 국내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2.2%를 기록하며 석 달 연속 올라 5개월 만에 목표치인 2%대를 웃돌았다. 수입에 의존하는 석유류가 7.3% 올라 지난해 7월 이후 최고 상승률을 보였다. 강달러가 수입 물가를 끌어올리는 형국인데 한은이 금리 인하로 돈을 풀 경우 달러 강세가 더 심화돼 물가가 더 오르는 악순환이 반복될 수 있다.
이성훈 키움증권 연구원은 “미국의 1월 CPI 발표에 따라 다음 달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금리 동결이 기정사실화됐다”며 “국내 기준금리 인하가 쉽지 않은 상황이 됐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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