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금융사 캐피털원의 ‘벤처X 카드’는 연회비가 395달러(약 57만 원)인 프리미엄 카드로 첫 3개월 내 4000달러를 사용하면 제휴사 항공권 발급에 사용할 수 있는 7만 5000마일을 한 번에 제공한다. 해당 마일리지는 한국에서 미국과 유럽 일반석 왕복 항공권을 바로 구매할 수 있는 수준이다. 편도 비즈니스석 업그레이드도 가능하다. 카드 발급 후 매년 1만 마일리지와 1달러당 2마일을 적립해준다. 청구액에서 300달러를 깎아주는 크레디트도 제공한다. 연회비가 없는 체이스은행의 ‘프리덤 언리미티드’ 카드도 신규 가입 시 200달러를 준다.
한국은 다르다. 마일리지를 통으로 제공해주는 곳이 아예 없을 뿐더러 카드사들의 혜택도 제한적이다. 연회비 50만 원인 현대카드의 ‘더 레드 스트라이프 에디션2’는 바우처 최대 80만 원, 공항 라운지 연 10회, 1500원당 1마일 적립 정도다.
이유는 뚜렷하다. 국내 카드사들은 한쪽으로는 수수료율을 낮춰야 하고 다른 쪽으로는 마케팅을 제한받는다. 카드사가 순이익을 많이 내면 마케팅 비용을 늘릴 수 있지만 수수료 부문에서 손실이 많다 보니 건전성을 걱정한 정부가 마케팅을 제한하고 있다. 여신금융업법 시행령에 따르면 카드사는 소비자에게 연회비의 100%를 초과하는 경제적 이익을 제공할 수 없다. 관치에 규제가 더해지면서 한국 카드 고객들은 미국에서와 같은 혜택은 꿈도 못 꾸게 된 셈이다. 카드 업계의 한 관계자는 “한국의 카드사도 마케팅 전략에 따라 더 많은 혜택을 제공하고 싶을 때가 있지만 시행령으로 제한받는다”며 “결국 법 때문에 소비자가 누릴 수 있는 혜택이 줄어드는 구조”라고 설명했다.
규제는 더 많다. 업계에서는 당국이 자율규제라는 이름으로 카드사들의 운영을 제한하고 있다고 입을 모은다. 모범규준과 가이드라인, 표준약관 등의 형태가 대표적이다. 카드사의 한 관계자는 “겉으로는 자율이라고 하지만 따르지 않으면 불이익이 있기 때문에 사실상 규제나 다름없다”고 토로했다.
카드사의 본업인 가맹점 수수료 수익(신용판매 수익)이 줄다 보니 카드사들이 카드론과 신용대출을 대폭 늘리고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에 뛰어드는 부작용도 나타나고 있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BC카드를 제외한 국내 7개 전업 카드사의 지난해 1~3분기 신용판매 수익은 4조 1357억 원으로 전체의 22.8%에 불과하다. 반면 카드론 수익은 20.2%에 이른다. 본말이 전도된 셈이다. 카드론 같은 대출의 경우 올해 경기 침체와 맞물려 부실이 커질 가능성이 높다. 카드사를 분사하지 않은 은행들의 신용카드 대출금 연체율은 지난해 11월 말 현재 3.4%로 전달(3.4%)과 같았다. 카드 연체율이 두 달 연속 3.4%를 웃돈 것은 카드 사태 끝 무렵인 2005년 이후 처음이다.
전문가들은 카드 사태의 트라우마가 남아 있는 정부의 과도한 관치와 카드사를 통한 자영업자 지원이 업계를 고사시키고 있다고 입을 모은다. 카드 가맹점 수수료만 해도 지금까지 총 5번 이뤄진 재산정에서 매번 수수료율이 인하됐다. 중소·영세가맹점 대상도 2012년 2억 원에서 2018년 30억 원 이하로 6년 만에 빠르게 확대했다. 여신전문금융업법상 영세한 중소신용카드가맹점을 정하는 데 상위법에 명문화된 원칙이나 제한을 두지 않았기 때문이다. 현재 영세·중소가맹점으로 분류돼 우대 수수료를 적용받는 가맹점은 전체의 약 96%에 달한다. 같은 기간 부가가치세법상 간이과세자 기준(4800만 원 미만)은 변화가 없었던 것과 대비된다.
황용식 세종대 경영학과 교수는 “국가의 경제가 발전하려면 기업이 많아야 하고 기업이 고용을 창출하는 선순환이 필요한데 우리나라는 유독 자영업자 비중이 높은 편으로 이러한 형태는 탄탄한 경제구조가 아니다”라면서 “자영업자가 힘들다고 해서 일시적인 금융 지원으로만 연명시키는 것은 의미가 없고 근본적인 산업구조 개선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