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 당국이 영세·중소 업체의 카드 가맹점 수수료율을 내리면서 최근 12년간 카드 업계가 입은 손실이 최소 25조 원에 달하는 것으로 확인됐다. 정부가 자영업자 지원이라는 정치적 목적에 카드사들을 동원한 결과다. 전문가들은 관 주도의 수수료율 재산정 체계를 없애기 위한 로드맵을 세워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14일 금융계에 따르면 2013년부터 2024년까지 금융 당국의 중소 가맹점 수수료율 인하에 따른 업체들의 누적 혜택이 25조 5268억 원으로 집계됐다. 올해분까지 더하면 28조 9907억 원이다. 이날부터 연 매출 30억 원 이하 영세·중소 가맹점의 카드 결제 수수료가 최대 0.1%포인트 낮아진다.
자영업자들은 수수료율 인하로 이 금액만큼 이득을 취했지만 카드사들은 손실을 봤다. 카드 수수료율 인하 여파가 본격화한 2014년 2조 1955억 원이었던 전업 카드사들의 당기순이익은 2023년 2조 5823억 원 수준에 그쳤다. 2014년 대비 지난해 취급액이 두 배가량 많지만 순익은 사실상 제자리걸음을 했다.
금융 당국은 매년 8739억 원 규모의 수수료율 인하 계획을 2012년 발표(2013년부터 적용)한 뒤 3년마다 이뤄진 재산정 때마다 수수료율을 내려왔다. 우대 수수료율을 적용받는 영세·중소 가맹점은 제도 도입 당시 연 매출 2억 원 이하였지만 6년 만에 30억 원 이하로 확대됐다. 김상봉 한성대 경제학과 교수는 “현재 가맹점의 약 96%가 우대 수수료율을 적용받고 있는 것부터 아이러니”라며 “가맹점 수수료를 법으로 제한하는 나라는 한국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뿐만이 아니다. 카드사들이 수수료 인하로 돈을 벌지 못하다 보니 고객들에게 나갈 혜택만 쪼그라들고 있다. 미국에서는 카드 신규 가입 시 4만~7만 마일의 항공 마일리지를 제공하는 상품도 있지만 한국에서는 불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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