샐러드 정기배송 서비스를 이용 중인 박 모(25)씨는 최근 예기치 않게 샐러드 배송이 한 차례 중단된다는 소식을 전달받았다. A 샐러드 업체 측은 10일 “최근 급격한 한파로 수급 채소가 냉해 피해를 입었다”면서 샐러드 배송이 불가하다고 공지했다. 그뿐만 아니다. 직거래 커뮤니티에서도 “한파로 채소가 언 채 배송됐다”면서 피해를 토로하는 후기들이 잇달아 올라왔다. 이처럼 잦은 눈과 한파로 냉해 피해가 확산되면서 평년 대비 무 값이 90% 뛰는 등 필수 반찬을 위한 채소 수급에 비상이 걸렸다.
최근 서울경제신문이 찾은 서울 도봉구 방학동 도깨비시장 상인들은 한파로 인한 공급량 하락을 호소하고 있었다. 25년 동안 도깨비시장에서 농산물을 판매해온 상인 이상호(65)씨는 “제주도에서 시금치와 봄동, 무가 나는데 눈이 오면 작업을 하지 못해 값이 오른다”면서 “보름 전에 한 박스 2만 5000원이었던 봄동 가격이 눈이 내리고 날이 추우니 어제는 8만 원으로 뛰었다”고 말했다. 채소를 전문적으로 판매하는 윤 모(63)씨도 “명절 전부터 가격이 꾸준히 오르더니 봄동, 시금치, 특히 쪽파가 정말 많이 올랐다”고 전했다.
실제 샐러드나 반찬류에 광범위하게 사용되는 채소류 시세는 크게 뛰어오른 상태다.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에 따르면 13일 기준 무(상품 1개)의 소매 가격은 3264원을 기록해 전년 대비 89.8% 올랐다. 같은 기간 당근(상품 1㎏) 값도 5705원으로 45.5% 상승했다. 양배추(상품 1포기)는 전년 대비 68.7% 높은 6185원에 시세가 형성됐다.
가격이 가장 큰 폭으로 급등한 무의 경우 지난해 가을까지 이어진 늦더위가 결정적으로 작용했다. 여기에 최근 한파와 강설이 제주 농가를 덮치면서 겨울철 이 지역에서만 나는 ‘월동무’의 출하량도 꺾였다. 채소류 구매를 담당하는 한 유통업계 관계자는 “전국적으로 재배가 부진한 탓에 12월 초부터 수확해 저장해두는 제주산 월동무 물량을 당겨 썼지만 이제는 그마저도 부족해진 상황”이라면서 “무는 각종 반찬류에 폭넓게 쓰이는 채소라 공급이 조금만 줄어도 시세가 폭등한다”고 설명했다.
무의 경우 영하로 기온이 떨어지면 냉해 피해가 발생하는데, 기상청 기상자료개발포털에 따르면 올해 지난달 1일부터 이달 13일까지 월동무의 주요 생산지인 성산에서 일 최저기온이 0도 이하로 떨어진 날은 13일을 기록했다. 지난해 같은 기간 영하였던 날이 6일 수준이었던 것과 비교하면 2배 이상 늘어난 것이다.
다른 채소들도 줄줄이 이상 기후의 영향을 받고 있다. 남부 지방 양배추는 적었던 강수량으로 인해 속이 둥글게 차오르지 못하는 상황이다. 11월부터 이듬해 3월까지 시중에 풀려 나오는 물량의 대다수를 차지하는 제주산 당근도 7월부터 계속된 가뭄과 폭염의 영향 탓에 씨앗을 다시 심어야 했다
달라진 농업 환경에 대해 가장 빠르게 체감하는 이들은 농민들이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이 발표한 ‘2024년 농업·농촌 국민의식 조사’에 따르면 실제 농업인의 88.4%는 지난 3~5년간 기후변화로 인해 영농활동에 영향을 받았다고 응답한 것으로 나타났다. 농업 경영의 가장 큰 위협 요소도 ‘기후변화에 따른 기상이변과 재배 여건 변화(20.0%)’가 꼽혔다.
생산량 자체가 줄어드니 높아진 채소값에 소비자와 자영업자들도 울상이다. 도깨비시장에서 만난 주부 김 모(77)씨는 “설 전부터 채소 가격이 오르더니 눈이 오고 상태가 심각해졌다”면서 “가격 오르지 않은 게 없어, 다 올랐어”라고 손을 내저었다. 몇몇 사람들은 채소 가판대 옆에 놓인 가격표를 보더니 가격을 중얼거리다 그대로 자리를 떠나기도 했다.
서비스 개념으로 챙겨주던 풋고추·양파 등 밑반찬이 ‘리필 1회’로 임시 제한되는 현상도 벌어졌다. 샐러드 가게를 운영하는 A 씨는 “샐러드의 객단가가 낮은 데다가 채소 값이 일정하지 않고 널뛰기하다 보니 이렇게 치솟게 되면 매출 피해가 극심하다”고 전했다.
최병옥 한국농촌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2000년대·2010년대와 비교해 한파인 날들이 늘어나면서 기상 환경에 영향을 많이 받는 신선채소의 수급 불안이 커지고 있다”면서 “김장철 이후 봄철 채소가 나올 때까지 수급량 불안이 없도록 노지 채소(밭농사 채소) 품종 개발과 비축 시설 지원 등 정부 차원의 전폭적인 지원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