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부대동맥류 파열로 35분간 심정지 상태였던 80대 환자가 의료진의 신속한 조치를 통해 기적적으로 살아난 사연이 뒤늦게 알려졌다. 2개월 여에 걸친 치료 끝에 퇴원한 환자와 보호자는 마지막까지 포기하지 않았던 의료진에게 감사하며 "기적을 선물 받았다"고 말했다.
18일 이화의료원에 따르면 작년 12월 9일 오전 10시경 경기도 파주시 자택에서 샤워 중이던 권모(84) 씨가 갑자기 의식을 잃고 쓰러졌다. 치매를 앓던 권씨를 곁에서 돌보던 아들이 이를 발견하고 즉시 119에 신고했다.
평소 진료받던 경기도 고양시 종합병원 응급실로 이송된 권씨는 검사 결과 복부대동맥류 파열로 진단됐다. 복부대동맥은 심장에서 뿜어 나온 혈액이 장기로 가는 통로다. 터지면 과다출혈로 숨지거나 장기 등이 망가지기 때문에 분초를 다투는 초응급 질환으로 분류된다. 권씨는 현장 의료진의 빠른 조치로 즉각 수술이 가능한 의료기관을 수소문한 끝에 서울 강서구 이대서울병원으로 전원됐다.
권씨와 보호자가 이대서울병원 내 이대대동맥혈관병원에 도착한 건 같은 날 오후 5시 30분경이었다. 그러나 권씨의 심장이 뛰질 않아 수술이 불가능했다. 권씨가 도착하자마자 심정지 상태를 확인한 송석원 이대서울병원 심장혈관외과 교수(이대대동맥혈관병원장) 팀은 35분간 심폐소생술을 시행했다. 의료진이 망연자실할 때쯤 권씨의 아들은 오열하며 "아버지가 오랫동안 치매를 앓았다. 아버지랑 마지막으로 제대로 된 대화를 해본 지가 너무 오래다. 꼭 소생시켜 달라"고 애원했다.
기적이 일어난 걸까. 얼마 지나지 않아 환자의 심장이 뛰기 시작했고, 송 교수팀은 때를 놓치지 않고 즉시 수술에 들어갔다. 이대대동맥혈관병원의 초대 병원장을 맡고 있는 송 교수는 대동맥수술 분야에서 세계적인 전문가로 꼽힌다. 통상 6시간 걸리는 t-Branch 스텐트-그라프트 수술을 2시간 만에 성공하고, 20%에 달했던 대동맥 관련 수술 후 사망률을 3%로 낮춰 '신의 손'이라는 별명으로 통한다.
권씨는 무사히 복부 대동맥 인조혈관 치환술을 받았고 중환자실에서 치료를 받은지 약 3주만에 일반 병실로 이동할 정도로 호전됐다. 이후 심폐 기능 회복, 근력 및 지구력 강화 등 재활치료를 거쳐 지난 14일 퇴원했다.
해당 사연은 아들 권씨가 퇴원하며 '송석원 교수님과 이대대동맥혈관병원 의료진들에게 드리는 글'이라는 제목의 편지를 남기며 세간에 알려졌다.
그는 "아버지가 일반 병실로 온 후 송석원 교수가 첫 회진 때 '아버님은 정말 기적이었다'고 말해주셨다"며 "저야말로 교수님을 만난 것이 기적이었다"고 적었다.
송 교수는 "매일 초응급환자를 마주하지만 이렇게 35분 동안 뛰지 않던 심장이 다시 뛰어 살아난 경우는 드문 사례로 그저 기적이라고밖에 할 수 없다"며 "아들의 간절한 염원 덕분에 기적이 일어난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이번 일을 통해 대동맥혈관을 치료하는 의사로서 사명감과 큰 보람을 다시금 느꼈다. 앞으로도 더 많은 대동맥 환자를 살리기 위해 노력하겠다"고 덧붙였다.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