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메뉴

검색
팝업창 닫기
이메일보내기

'주 52시간 족쇄' 반도체 업계에 치명적인 5가지 이유는

①고부가 파운드리 납기·수율에 치명적

② 장기간 R&D 몰입 꿈도 못꿔

③ AI 반도체 등 첨단 공정 악화

④ 숙련인재 부족에 운영난 가중

⑤ 美·日 등 근로시간 규제 덜해

반도체 무너지면 안보도 '흔들'

"불발된 반도체특별법 살려야"

삼성전자 반도체 라인의 내부 전경. 사진 제공=삼성전자




“주52시간제 도입으로 생산 스케줄 전반이 늘어지면서 납기를 맞추기도, 수율을 끌어올리기도 어려워졌어요.”

국내 반도체 업계 고위 관계자는 19일 기자와 만나 “생산 과정에서 여러 돌발 상황에 대응하다 보면 납품 기한에 임박해 일이 몰릴 때가 있는데 근로시간 규정을 지키다 보면 고객사와 약속을 어기는 경우가 종종 생긴다”며 이같이 토로했다. 그는 특히 이틀 전 국회에서 반도체 연구개발(R&D) 부문 주52시간제 예외 적용 법안이 무산된 것에 격한 아쉬움을 드러냈다.

유독 반도체 업계에서 주52시간제 예외에 목매는 것은 산업의 특수성 때문이다. 특히 파운드리(반도체 위탁 생산)의 경우 ‘선주문 후생산’ 구조여서 고객사 요구에 얼마나 즉각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지가 신뢰로 연결되고 사업 향방까지 좌우한다. 공급이나 문제 해결이 자꾸 지연되면 고객사들 사이에 소문이 빠르게 번진다. 반도체 생산 수율은 여러 번의 시도와 경험을 통해 쌓은 데이터를 기반으로 올라가는데 근로시간 제약은 수율 안정화에도 차질을 준다.





다른 나라에서는 이런 문제가 발생하면 해결될 때까지 개발 인력들이 밤낮없이 달려들어 고객 지키기에 공을 들인다. 예를 들어 대만 TSMC는 2023년 3㎚(나노미터·10억분의 1m) 칩 제품에서 발열 문제가 발생하자 가용 가능한 인력을 총동원해 빠르게 수습했다. 삼성전자(005930)는 2022년 6월 업계 최초로 3나노 공정에 신기술인 게이트올어라운드(GAA) 공정을 도입하는 등 기술적 우위를 확보했지만 TSMC 특유의 고객 대응 능력을 따라잡지 못했다. 결국 2010년대 말 20%를 넘봤던 삼성전자의 파운드리 시장점유율은 지난해 말 8%대까지 하락했다.

주52시간제로 R&D에 소요되는 시간도 길어졌다. 반도체 R&D는 상당 시간을 테스트에 써야 한다. 정해진 시간에 맞춰 업무를 중단하면 의미 있는 결과를 얻어내는 데 많은 시일이 걸릴 수밖에 없다. 인공지능(AI) 반도체와 직결되는 첨단 공정 개발력도 약화할 수밖에 없다. 1위 업체가 시장 과실을 대부분 차지하는 ‘승자독식’ 구도가 심화하고 있는 반도체 시장에서 나라가 나서 ‘기울어진 운동장’을 만든 셈이다. 숙련 인력을 길러낼 시간도 길어지면서 반도체 인재 부족이 심화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이혁재 서울대 전기정보공학부 교수는 “30분만 더하면 결과를 얻을 수 있는 상황에서도 퇴근한다”며 “연구는 다음 날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고 이로 인해 많은 시간이 낭비된다”고 지적했다.

R&D 직무에서 근로시간 제한이 덜하거나 없는 미국·일본·중국 경쟁 업체들은 빠르게 국내 업체들과의 격차를 좁히고 있다. D램 업계 3위인 미국 마이크론은 지난해 국내 기업들보다 먼저 최첨단 고대역폭메모리(HBM) 5세대 제품을 양산했다. 중국 CXMT는 올해 초 고부가 서버용 D램인 DDR5 상용화에 성공하며 국내 업체와 격차를 좁혔다.

반도체 업계는 국회에서 발이 묶인 반도체산업 경쟁력 강화 및 육성을 위한 특별법이 하루빨리 처리돼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이 법에는 주52시간 예외 조항이 담겼지만 더불어민주당이 삭제 방침을 정했다. 반도체특별법을 통해 노사 합의로 근로시간을 자율적으로 정하면 R&D 경쟁력이 크게 뛰어오를 수 있다고 업계는 보고 있다. 근로시간 유연화와 발맞춰 합당한 보상 체계를 마련하면 오히려 직원들의 만족도가 높아질 수 있다는 주장도 나온다. 예를 들어 TSMC가 2014년 삼성전자의 14나노 핀펫 공정 양산에 대응하기 위해 시행한 ‘나이트호크(R&D 부서를 24시간 3교대로 운영)’ 프로젝트에는 400여 명의 직원이 자원했다. 밤 11시에 출근해 다음 날 오전 10시에 퇴근하는 ‘야간조’에는 연봉의 30%를 추가로 주고 연말 성과급도 50% 더 얹어주는 파격적인 보상책이 있었기 때문이다.

안기현 반도체산업협회 전무는 “R&D는 시간으로 일하는 게 아니라 주어진 문제를 얼마나 풀었느냐가 중요한 척도가 돼야 한다”며 “다만 희생만 강요하는 회사에서는 핵심 인재들의 이직 경향이 높은 만큼 국가와 기업에 기여하는 정도 이상으로 보상을 해줘야 한다”고 말했다.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주소 : 서울특별시 종로구 율곡로 6 트윈트리타워 B동 14~16층 대표전화 : 02) 724-8600
상호 : 서울경제신문사업자번호 : 208-81-10310대표자 : 손동영등록번호 : 서울 가 00224등록일자 : 1988.05.13
인터넷신문 등록번호 : 서울 아04065 등록일자 : 2016.04.26발행일자 : 2016.04.01발행 ·편집인 : 손동영청소년보호책임자 : 신한수
서울경제의 모든 콘텐트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 전재·복사·배포 등은 법적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Copyright ⓒ Sedaily, All right reserved

서울경제를 팔로우하세요!

서울경제신문

텔레그램 뉴스채널

서경 마켓시그널

헬로홈즈

미미상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