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관세를 무기로 액화천연가스(LNG) 수출을 확대하면서 천연가스 가격 상승에 베팅한 상장지수증권(ETN)의 수익률이 고공행진 중이다. 대미 무역 흑자국들이 미국산 LNG 수입 확대를 검토, 천연가스 가격이 치솟은 여파다. 이런 가운데 국내 개인 투자자들은 천연가스 가격 하락에 베팅하는 ‘인버스 ETN’ 상품을 사들이는 것으로 파악됐다.
23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이달 들어 수익률 상위 20개 ETN 중 13개가 천연가스 선물 가격 상승에 베팅하는 상품인 것으로 나타났다. ‘하나 블룸버그 2X 천연가스 선물 ETN(H)B’는 지난달 말 5150원이던 주가가 지난 21일 현재 9515원으로 84.8% 급등했다. 해당 상품은 뉴욕상업거래소(NYMEX)에서 거래되는 천연가스 선물의 가격이 상승할 때 일간 상승률의 2배만큼 수익을 낼 수 있는 상품이다.
아울러 '메리츠 블룸버그 2X 천연가스선물 ETN(H) B'와 '대신 S&P 2X 천연가스 선물 ETN B'도 같은 기간 각각 83.7%, 81.6% 상승했다. 뉴욕상업거래소에서 천연가스 3월물 가격은 지난달 말 기준 MMBtu(25만㎉ 열량을 내는 가스의 양)당 3.04달러에서 지난 21일 4.23달러로 39% 올랐다.
이 같은 LNG 가격 상승은 연초 미국과 유럽에 극심한 한파가 찾아오면서 난방 수요가 증가한 데다, 트럼프 2기 행정부에서 LNG를 관세 전쟁을 위한 핵심 카드로 내세우면서 대미 무역 흑자국들이 미국산 LNG 수입 확대를 검토하고 있는 영향이다. 미국은 현재 LNG를 대거 수입해 대미 무역적자를 내는 국가를 제외하고는 동맹국 여부와 관계 없이 관세 부과 카드를 내밀고 있다. 이에 일본 정부는 미국과의 정상회담에서 트럼프 관세로 인한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미국산 LNG 수입 확대 등을 약속했다.
이밖에 인공지능(AI) 확대로 필수가 된 데이터센터의 안정적 가동을 위해서는 기후 등에 따른 발전량 변동성이 큰 재생에너지보다 가스가 더욱 안정적인 발전원이라는 인식도 LNG 수요를 자극하고 있다.
천연가스 수요가 급등한 여파로 천연가스 선물 가격 하락에 베팅하는 인버스 ETN은 이달 수익률 최하위권에 머물렀다. 이달 수익률이 가장 낮은 ETN은 ‘한투 블룸버그 인버스 2X 천연가스선물 ETN’으로 지난달 말 3만6530원에서 지난 21일 1만 7825원으로 51.2% 하락했다. ‘대신 S&P 인버스 2X 천연가스 선물 ETN’과 ‘하나 블룸버그 -2X 천연가스 선물 ETN(H)’도 각각 51.1%, 50.6% 내리며 두 번째와 세 번째로 낙폭이 컸다.
개인 투자자는 이들 상품을 대거 사들이며 저가 매수에 나서는 모습이다. 이달 들어 개인은 ‘한투 블룸버그 인버스 2X 천연가스선물 ETN’을 115억 원 순매수했으며 ‘대신 S&P 인버스 2X 천연가스 선물 ETN’과 ‘하나 블룸버그 -2X 천연가스 선물 ETN(H)’도 각각 16억 원, 18억 원어치 순매수했다.
단기적으로 기온이 올라가면서 천연가스 가격이 하방 압력을 받을 것이란 기대가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최진영 대신증권 연구원은 “미 천연가스 계절성 재고를 살펴보면 2월 중순까지 감소하던 재고가 이후 5월 중순까지 증가한다”며 “2월 말부터 거래될 천연가스 선물은 4 월물로 재고 증가 사이클을 반영할 수밖에 없다”고 분석했다. 미국과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전쟁 종전 협상 진행 과정에서 대러시아 제재가 완화될 경우 러시아산 천연가스 공급이 재개되면서 가스 가격이 하락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그러나 트럼프 대통령이 천연가스를 관세 협상용 카드로 이용하고 있어 장기적으로 천연가스 가격이 상승할 것이라는 전망이 적지 않다. 트럼프 대통령이 우크라이나 전쟁 종전 후 러시아의 시장 복귀 전 시장 점유율 확보를 위해 관세를 협박해 다른 국가들과 천연가스 장기 계약을 체결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이럴 경우 장기간 인버스 상품을 보유한다면 개인 투자자의 손실이 커질 수 있다.
조민주 키움증권 연구원은 “중국이 미국산 LNG 관세 부과로 맞대응했다는 점은 트럼프의 관세 조치가 LNG 수출 확대용 카드라는 것을 방증한다고 판단된다”고 짚었다. 박상현 iM증권 연구원은 “이달 기준 독일을 포함한 유럽의 천연가스 비축율은 지난 5년간 평균 비축율을 크게 하회하고 있다”면서 “낮은 재고 수준으로 인해 올 여름 천연가스 재고 확충 수요가 늘어 수급 불안 현상을 부추길 수도 있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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