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랍에미리트(UAE) 바라카 원전 건설·운영 과정에서 발생한 최대 1조 4000억 원 규모의 추가 비용을 두고 한국전력공사와 한국수력원자력의 갈등이 격화하고 있다. 한전은 “충분한 근거 서류를 제출하면 비용을 지급하겠다”고 주장하는 반면 한수원은 “이미 충분한 자료를 제출해왔다”며 맞서고 있다. 양측의 감정의 골이 깊어지면서 이번 갈등이 국제 중재 절차를 밟는 사상 초유의 사태로 번질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24일 전력 업계에 따르면 한수원은 한전과의 협상이 어렵다고 보고 국제 분쟁 준비를 위한 실무 작업에 착수했다. 앞서 한수원은 한전과 바라카 1~4호기 시운전을 포함한 운영·지원(OSS) 용역 계약을 맺었다. 지난해 바라카 4호기까지 상업 운전에 돌입하면서 한전과 여러 협력사 사이의 정산 작업이 진행 중인데 한수원 측이 수행한 작업에서 발생한 최대 10억 달러(1조 4000억 원) 규모의 추가 비용을 누가 부담할지가 쟁점이다.
현재 한전은 “한수원이 적정한 증빙 자료를 제출하고 타당성이 확인되면 비용을 지급하겠다”고 밝히고 있다. 발주처로부터 추가 비용 협상을 마무리 지은 뒤 협력사와 정산하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필요시 일부 비용을 먼저 지급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한수원은 이 같은 제안 자체가 한전의 지연 전략이라는 입장이다. 한수원 관계자는 “청구 사항 대부분은 한전의 귀책사항으로 발생한 것”이라며 “발주처와 먼저 협상하겠다는 것은 정산을 미루고 비용을 전가하겠다는 의도”라고 말했다.
원전 수출을 위해 힘을 모아야 할 두 공기업이 분쟁을 겪고 있지만 정부는 손을 쓰지 못하고 있다. 최종 의견 조율에 나서야 할 대통령실이 탄핵 국면 탓에 제 기능을 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정부 관계자는 “한전은 개인 주주가 있는 상장사”라며 “공직자가 기업간 분쟁에 개입해 협상을 주도했다가 배임 등의 문제에 휘말릴 수 있다”고 말했다.
한편 양측의 갈등이 다시 불거진 것은 김동철 한전 사장의 지난주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 발언 때문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김 사장은 양측 갈등과 관련된 질의에 대해 “자회사가 모회사를 상대로 클레임을 제기해 매우 유감”이라며 “받아들일 수 없는 일”이라고 언급했다. 당초 김 사장과 황주호 한수원 사장은 지난달 추가 비용 정산 문제를 두고 실무 협상을 이어가기로 합의했는데 김 사장이 공개적으로 한수원을 비판하자 한수원이 더 이상 원활한 협상은 어렵겠다는 판단을 내렸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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