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DC그룹이 2020년 무위로 끝난 아시아나항공 인수 시도 이후 멈춰 섰던 인수합병(M&A) 시계를 5년 만에 다시 돌린다. 당시 인수 작업을 총괄했던 정경구 HDC현대산업개발 대표가 주요 자문사를 접촉하며 인수 후보를 추천받는 것으로 파악됐다. 현재 HDC그룹은 건설(HDC현대산업개발)과 에너지(통영에코파워)를 두 축으로 삼고 있다. 기존 사업과 시너지를 내면서도 신성장 동력으로 키울 새로운 축을 세운다는 목표 아래 인수 후보를 물색 중이다.
25일 투자은행(IB) 업계에 따르면 HDC그룹은 주요 자문사를 통해 M&A 시장 매물 파악에 나섰다. 키를 쥐고 있는 건 정 대표로 직접 자문사 관계자를 만나고 있다. 시장 분위기를 살피는 동시에 그룹의 M&A 방향성을 설명하며 적합한 매물 추천을 요청 중이다.
HDC그룹이 내놓은 조건은 크게 세 가지다. 산업 측면에서는 HDC그룹의 기존 사업과 시너지를 내면서도 신성장 동력이 될 만한 기업간거래(B2B) 매물을 찾는 것으로 전해졌다. 매도자 측면에서는 대기업발 카브아웃(사업부 분할) 매물을 우선적으로 검토한다. 사모펀드(PEF) 운용사가 보유한 포트폴리오 기업도 가격이 맞는다면 인수 후보가 될 수 있다는 입장이다. 거래 규모는 예상 매각가 1조 원대 매물까지 보고 있다.
인수 후보 산업군으로는 △부동산 개발 관리 △친환경 △데이터센터 등이 꼽힌다. 가장 유력한 인수 후보군으로는 부동산 개발 관리, 친환경 에너지가 꼽힌다. 이 중 정 대표가 내세운 3가지 조건에 가장 부합하는 기업으로는 SK그룹의 SK디앤디, SK에코플랜트의 리뉴어스(전 환경시설관리)와 리뉴원(전 대원그린에너지) 등이 꼽힌다. SK디앤디의 경우 HDC그룹의 종합개발사업자(디벨로퍼) 도약 비전을 위한 최적의 인수 후보로 꼽힌다. HDC그룹은 총사업비 4조 5000억 원의 광운대 역세권 개발 사업을 주도하는 한편 지난해 11월에는 계열사인 HDC자산운용을 통해 남산스퀘어를 약 7000억 원에 인수했다. HDC그룹은 디벨로퍼로서 남산스퀘어 기존 건물과 주차장 부지에 신축될 건물을 공중에서 연결해 랜드마크를 조성하는 방식을 구상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SK에코플랜트의 친환경 계열사는 건설·에너지 발전 사업과 시너지를 구가하면서도 신성장 동력으로 가치가 충분하다는 평가다. IB 업계 관계자는 “건설과 에너지 발전은 폐기물이 발생할 수밖에 없는 구조”라며 “인허가 산업이라는 특성도 경제적 해자를 보장해주는 요인”이라고 짚었다. 다만 SK에코플랜트의 리뉴어스와 리뉴원의 예상 매각가 2조 원에 달하는 점은 HDC그룹에 부담이 될 수 있다. HDC그룹이 1조 원에 달하는 현금 및 현금성 자산을 쌓아두고 있지만 지난해 3분기 말 기준 2조 7657억 원의 우발 채무를 보유한 만큼 실제 투입 가능한 금액은 제한적일 것이라는 분석이다. 일각에서는 깜짝 거래가 이뤄질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HDC그룹이 신성장 동력을 원하는 만큼 인공지능(AI) 데이터센터 산업 진출 가능성도 있다는 것이다.
시장에서는 HDC그룹이 한 번 칼을 빼든 만큼 최소 수천억 원대 거래를 성사시킬 것이라고 기대하고 있다. 아시아나항공 인수 무산의 과오를 설욕할 기회로 본다는 것이다. 실제 2조 5000억 원에 달하는 아시아나항공 인수전 참전 이전만 하더라도 HDC그룹은 M&A 시장에서는 조막손으로 평가됐다. 2006년 HDC영창 인수(563억 원·전 영창악기제조), 2018년 부동산114(637억 원), 2019년 HDC리조트(580억 원·전 오크밸리리조트) 등 인수를 하더라도 수백억 원대 매물에 그쳤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시아나항공 인수전 후 HDC그룹의 눈높이가 확 달라졌다는 전언이다. 이제는 본격적인 몸집 불리기에 나서 범현대가로서 존재감을 드러낼 때라는 관측이다.
IB 업계 관계자는 “HDC그룹의 인수 실탄은 충분한 상황”이라며 “SK·롯데 등 주요 그룹사가 리밸런싱에 나선 만큼 우량 매물 인수에 적극적으로 나설 때라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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