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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속 120m 들어가자 "와"…'비밀의 연구실' 들어가보니

■원자력硏 지하처분연구시설 가보니

120m 깊이서 국내 유일 방폐장 테스트

23개 핵종, 300개 재료로 내구성 실험

지질학 총망라해 최대위험 지하수 예측

“70% 진척”…특별법 통과 맞춰 총력전

대전 유성구 한국원자력연구원 ‘지하처분연구시설(KURT)’에서 연구자들이 방폐장 안전성 연구를 위한 연구를 수행하고 있다. 사진 제공=한국원자력연구원




“50기압·125도 환경에서 끄떡없습니다.”

120m 깊이의 지하 동굴에서 연구자들이 금속 말뚝처럼 땅에 박힌 시추공 센서 옆에 나란히 서서 모니터 화면을 바라봤다. 화면은 용존산소, 수소이온농도, 산화환원전위, 수온 전기전도도 등 연구자들이 밟고 있는 땅 아래에서 시시각각 변하는 지하수의 상태를 보여줬다. 금속 말뚝은 겉으로는 고무 호스가 복잡하게 연결된 수도꼭지처럼 보였지만 400m 아래로 길게 뻗어 있다고 했다. 이를 포함해 최장 500m에 달하는 대형 금속 센서 140여 개가 동굴 이곳저곳에 박힌 채 방폐장 안전성 연구를 위한 데이터를 수집하고 있었다.



24일 서울경제신문이 직접 가본 대전 유성구 한국원자력연구원의 ‘지하처분연구시설(KURT)’은 ‘고준위 방사성폐기물 관리에 관한 특별법’ 통과를 앞두고 국내 유일의 방폐장 안전성 연구에 한창이었다. 향후 원전에서 발생하는 핵폐기물인 고준위 방폐물을 처분 용기에 담아 지하 깊숙이 묻을 방폐장의 안전성을 연구하고 지하수·열·압력 등 다양한 환경에서 안전성을 모의실험하는 국내 유일의 테스트베드다. 9년간 표류했던 특별법이 이달 중 국회 본회의까지 통과할 것으로 예상되면서 KURT 연구자들의 표정에도 책임감이 한층 더 짙어진 모습이었다.

대전 유성구 한국원자력연구원 ‘지하처분연구시설(KURT)’에서 연구자들이 방폐장 안전성 연구를 위한 연구를 수행하고 있다. 사진 제공=한국원자력연구원


비포장도로를 한참 지나 동굴 입구를 들어가 다시 10도 경사 아래로 550m를 걸어 내려가자 120m 깊이에 개미굴처럼 자리 잡은 연구 시설이 나타났다. 지하수에 젖어 질퍽해진 흙바닥은 물론 단단한 화강암 벽에도 크고 작은 센서들이 깊숙이 박힌 모습이었다. 센서들마다 고무 호스가 연결돼 병원의 링거마냥 화강암반 속으로 물을 주입하고 있었는데 이는 순수한 물이 아니라고 한다. 고준위 방폐물에서 나오는 성분인 세슘·요오드·브롬 등 핵종 23종을 저마다 다른 종류와 농도, 조합으로 용해시킨 물로서 실제 방폐장의 최대 위험 요인인 지하수를 구현한 것이다. 핵종이라는 말에 움찔했지만 실제 방사성물질이 아니라 그와 화학적 성질이 같으면서 방사성이 없는 동위원소를 쓴다고 한다.

24일 대전 유성구 한국원자력연구원 ‘지하처분연구시설(KURT)’에서 원자력공학 전공 대학생들이 방폐장 안전성 연구 현장을 살펴보고 있다. 사진=김윤수 기자


고준위 방폐물을 담은 처분 용기는 해수면보다 낮은 지하 500m에 묻힐 것이기 때문에 향후 암반을 통해 스며드는 지하수에 노출될 수 있다. 방폐물에 오염된 지하수가 암반 속에서 어떻게 퍼지고 사람이 사는 지상으로 올라올지는 당장 예측하기 어렵다. 소금물과 설탕물의 화학적 성질이 다르듯 지하수에 어떤 핵종이 얼마나 녹는지에 따라 화학적 성질이 달라져 암반을 타고 흐르거나 녹이거나 균열을 내는 속도와 방식이 모두 천차만별이기 때문이다. 23가지 핵종을 다양한 방식으로 품은 지하수가 암반을 타고 지상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미리 알 수 있는 일종의 ‘지하수맥 지도 제작법’을 습득하는 것이 KURT의 주요 임무 중 하나다.

24일 대전 유성구 한국원자력연구원 ‘지하처분연구시설(KURT)’에서 권장순 원자력연 처분성능실증연구부장이 대면적으로 다이아몬드 커팅한 화강암 단면을 가리키며 지하수 거동 모델링을 위한 지질학 연구를 소개하고 있다. 사진=김윤수 기자




이처럼 방폐장 안전성 연구는 지하수맥까지 파악해야 하는 만큼 원자력과 처분 용기 특성뿐 아니라 지질학까지 알아야 하는 종합적 연구 분야다. 실제로 KURT라는 개미굴을 이루는 방 한 칸에는 가로 5m, 세로 2m 이상 대면적으로 화강암을 반질반질하게 다이아몬드 커팅한 단면이 드러나 있었다. 단면 곳곳에는 지층이 어긋나거나 균열이 발생했거나 지하수가 흐른 흔적이 있는 부분을 식별하는 표시가 붙는 등 이곳에서 지질학 연구가 얼마나 활발히 이뤄지고 있는지 알 수 있었다.



현장을 살피던 권장순 원자력연 처분성능실증연구부장은 “특별법 통과 상황에 맞춰 데이터와 기술 확보에 속도를 내고 있다”며 “특히 지하수 거동에 관한 모델링 연구는 선진국 대비 70% 이상 수준으로 진척됐다”고 말했다. 정부는 2021년부터 2029년까지 4300억 원을 투입하는 관련 연구개발(R&D) 사업을 통해 지하수를 포함한 부지 평가 세부 기술 87종과 처분 용기, 운반 시스템, 독성 저감 등 관련 기술 총 473종을 확보해 방폐장을 지을 방침이다.

대전 유성구 한국원자력연구원 ‘지하처분연구시설(KURT)’에서 연구자들이 방폐장 안전성 연구를 위한 연구를 수행하고 있다. 사진 제공=한국원자력연구원


처분 용기의 재료가 될 금속 샘플을 지하수에 부식시키는 실험도 한창이었다. 샘플 종류만 300종이 넘는다고 한다. 구리·주철·탄소강·니켈합금 등 아직 고려해야 할 재료 후보가 다양할 뿐 아니라 주조나 3차원(3D) 프린팅 등 제작 방식에 따라서도 특성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실험은 센서를 따라 500m 지하에서 이뤄져 육안으로는 볼 수 없었다. 이는 50기압과 100도 이상의 고온 등 실제 방폐장 환경에 금속 샘플을 노출시키기 위해서다. 동굴 밖 실내 시설인 ‘공학적방벽시스템 성능실증 실험실’에서도 다양한 ‘미니 처분 용기’ 모형의 테스트가 이뤄졌다. 모형은 연탄재처럼 여러 구멍이 뚫린 원통이었는데 실제로는 4.5m 길이 다발 형태의 고준위 방폐물 덩어리를 심을 수 있는 크기로 만들어질 것이라고 한다.

24일 대전 유성구 한국원자력연구원 ‘공학적방벽시스템 성능실증 실험실’에서 고준위 방사성 폐기물 저장용 처분 용기 모형들이 실험을 기다리고 있다. 사진=김윤수 기자


방폐장은 전국적으로 이런 다발을 총 5만 개 수용해야 한다. 핀란드와 스웨덴 등 먼저 설계와 건설에 나선 선진국 사례를 참고해 국내 방폐장도 처분 용기를 땅에 심은 후 그 겉에 완충재 역할의 점토(벤토나이트)와 콘크리트를 덮는 형태가 될 것으로 전망된다. KURT 역시 폭·높이 6m, 길이 300m의 또 다른 방 한 칸 전체를 처분 용기 모형과 함께 콘크리트로 가득 채워 방폐장 실증에 나설 계획이다. 정부는 KURT 실험을 바탕으로 강원 태백시의 폐광 지역에 지하 500m의 신규 시설을 지어 연구를 고도화할 방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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