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고살기 위해 활을 들면 사냥에 쓰이지만 활에 실을 달아 하프로 사용하면 마음이 풍요로워지니, 활을 하프로 만드는 문화 정책을 펼쳐나가라.’ 저는 지금까지도 (이어령 전) 장관님이 해주신 말씀을 떠올리며 국민들의 마음이 풍요로워질 수 있는 문화 정책에 대해 고민하고는 합니다.”
유인촌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은 26일 서울 서초구 국립중앙도서관에서 영인문학관 주관으로 진행된 ‘이어령 초대 문화부 장관 3주기 추모식’에 참석해 고인을 추모하며 이렇게 말했다. 이는 유 장관이 2008년 문체부 첫 장관을 시작했을 때 고인에게서 들었다는 말이다. 고인은 1990년 문화부가 출범할 때 초대 장관을 지냈다.
유 장관은 “장관님은 우리 문화의 상징으로, 우리는 모두 장관님께 어떤 빚을 졌다고 생각한다”며 “예전에도 느꼈지만 다시 문화부에서 일하다 보니 장관님이 비옥하게 다져놓은 문화의 토양이 오늘날 우리 문화가 결실을 이뤄내는 데 얼마나 큰 역할을 했는지 실감할 때가 많다”고 말했다.
고인은 문체부의 전신인 ‘문화부’의 역사 그 자체다. 고인은 ‘문화부의 튼튼하고 당당한 주춧돌이 될 각오’라는 취임사로 문화부 초대 장관 임기를 시작해 국립국어연구원(국립국어원 전신)과 한국예술종합학교를 창립하는 등 오늘날 우리 문화 발전의 기틀을 마련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특히 1988년 서울 하계올림픽 총괄 기획자로 개막식의 ‘굴렁쇠 소년’ 장면을 연출해 세계인에게 큰 인상을 남겼다. 고인이 당시 내세운 슬로건 ‘벽을 넘어서’는 문화를 통해 미소 냉전의 벽을 허무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수많은 저서를 남기며 대한민국 변화의 시기마다 ‘디지로그’ ‘창조’ ‘문화’ ‘한국인’ 등 시대정신이 담긴 핵심어와 문화의 방향성을 제시했다.
이날 김주연 문학평론가는 이 전 장관의 ‘문화 산업’ 업적을 부각했다. 그는 이날 ‘이어령과 그의 문학’이라는 주제로 강연하면서 “그는 한국인 최초의 ‘문화산업자’였다. 문화의 산업성을 부각시킨 최초의 근대인이라고 할 수 있다”며 “문화에 산업적 가치가 있고 산업도 문화적으로 수용하고 평가할 수 있다는 근대적 철학을 도입한 분”이라고 했다.
이날 추모식에서는 또 이배용 국가교육위원회 위원장, 이근배 전 대한민국예술원 회장의 추모사와 박정자 배우의 이어령 선생의 시 ‘메멘토 모리’ 낭독이 있었다. 이어 성악가(바리톤) 최현수와 소리꾼 장사익의 추모 공연 등이 이어졌다. 추도식은 약 200명이 참석한 가운데 1시간 30분가량 진행됐다.
한편 고인의 3주기를 맞아 어록집 ‘이어령의 말’과 강연집 ‘이어령, 스피치 스피치’가 출간됐다. 4월에는 추모 전시회 ‘이어령의 문학사상’을 연다. 이 전 장관이 1972년 출판사 ‘문학사상’을 창립해 13년 동안 운영하면서 동명의 월간 문예지를 발간하는 등 당시 활동을 조명하는 전시다.
유 장관은 “장관님께서는 ‘보통 사람은 죽음이 끝이지만, 내 말과 생각이 남아 있다면 나는 그만큼 더 오래 사는 셈’이라고 하셨다. 우리는 언제든지 장관님을 만날 수 있으니 참으로 다행”이라고 전했다.
고인은 호적상 1935년 충남 아산에서 태어나 문학평론가·언론인·교수 등으로 활동했다. 고인은 1990년부터 이듬해인 1991년까지 노태우 정부 당시 신설된 문화부 초대 장관을 지냈으며 대한민국예술원 회원(문학평론)으로 활동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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