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초 회사채 시장이 활기를 띠자 석유화학·건설 등 ‘취약 업종’으로 분류되는 산업에서의 채권 발행이 잇따르고 있다. 이들 대부분은 수요예측에서 목표액을 채우는 데 성공하고 있지만 업황 불확실성을 의식해 민평금리(민간 채권 평가사들이 책정한 기업의 고유 금리)를 크게 웃도는 고금리로 채권을 ‘오버 발행’하는 중이다. 석유화학·건설 업종은 업황 부진으로 신용등급 하락 위험성이 큰 상황에서 고금리채가 중장기 재무 부담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26일 금융투자 업계에 따르면 동화기업은 2년물로 600억 원 규모 회사채 발행을 준비하고 있으며, 효성화학은 다음달 중순 500억~1000억 원 규모 1년물 회사채 발행에 나설 계획이다. 동화기업은 목재 보드·바닥재과 같은 건축소재를 제조하는 건설·부동산업 관련 기업이고 효성화학은 폴리프로필렌 등 석유화학 제품을 생산한다. 이들 업종에서 올 들어 회사채를 발행한 기업으로는 △한국자산신탁·SK에코플랜트·HL D&I 한라(건설·부동산) △SK지오센트릭·한화토탈에너지스·HD현대케미칼(석유화학) 등이 있다.
이들 다수는 최근 업황 부진을 고려해 민평금리를 크게 웃도는 고금리로 채권을 발행했다. 동화기업은 이달 27일 수요예측에서 연 4.50~5.10%의 금리를 제시할 계획인데 이는 동화기업의 2년물 민평금리(4.03%) 대비 작게는 47bp(1bp=0.01%포인트) 크게는 107bp 높다. 효성화학이 추진 중인 연 6.70~7.70%의 채권 금리 역시 민평금리(1년물, 5.83%)를 87~187bp 웃돈다. 한국자산신탁의 경우 민평금리 대비 3년물 채권은 62bp, 5년물은 80bp 높은 금리를 약속한 끝에 목표로 한 1000억 원의 자금을 받아냈다.
수요예측 흥행으로 자금이 몰리면 당초 계획한 것보다 높은 금리를 감수하고서라도 채권 발행 규모를 늘려 선제적 자산 확충에 나서는 기업도 다수다. SK지오센트릭은 본래 1500억 원의 회사채 발행을 계획했지만 지난달 수요예측에서 7700억원 상당의 주문을 확보하자 발행 규모를 3000억 원으로 늘렸다. 수요예측 당시 2년물은 7bp, 3년물은 ―5bp에 목표액을 채웠는데 이후 발행 물량을 늘리면서 민평금리와 비교해 2년물은 9bp, 3년물은 17bp를 더 지급하기로 했다. 채권을 늘리며 확보한 자금은 기존 채무 상환을 위해 사용할 예정이다.
시장 평가 금리를 초과하는 수준의 채권 오버 발행은 중장기적 재무 건전성에 악영향을 줄 수 있다. 건설·석유화학 산업 모두 경기 반등 시점이 불투명한 가운데 당기순이익 등 주요 실적 지표는 지속 악화하는 점도 부담이다. 화학 업종은 글로벌 수요 둔화에 원자재 가격 변동으로 수익성이 떨어졌다. 건설의 경우 부동산 경기 침체 여파로 공사미수금이 누적되면서 재무 부담이 늘어났다.
금융투자 업계 관계자는 “최근 오버 발행에 나선 기업 중에는 이자보상배율(영업이익을 이자비용으로 나눈 값)이 1 미만인 기업도 있다”며 “영업활동을 하며 내는 수익으로 이자를 갚기 어려운 상황에서 고금리채 발행을 늘리면 결국 중장기 재무 리스크가 커질 수밖에 없다"고 진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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