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힘은 로보틱스 전문 기업 외에 빅테크도 첨단 로봇 산업에 뛰어든다는 데 있다. 알리바바·화웨이·바이두·텐센트·샤오미 등 대표적인 중국 정보기술(IT) 공룡이 휴머노이드 로봇 개발에 나서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테슬라를 필두로 구글·애플·메타·마이크로소프트·엔비디아 등 미국 빅테크 역시 휴머노이드 사업에 대규모 투자를 예고한 만큼 양적 우위를 지키기 위한 중국의 로봇 굴기는 더욱 거세질 것으로 예상된다. 이찬 영남대 로봇공학과 교수는 “기존 로봇에서 인간형 로봇으로 진화하려면 로봇의 스케일을 키운 상태에서 원활하게 움직일 수 있도록 하는 구동 기술이 개발돼야 한다”면서 “중국과 미국은 이미 수년 전에 이런 기술적인 단계를 뛰어넘었다”고 진단했다.
더구나 인공지능(AI) 모델 발전으로 휴머노이드 기술 개선이 가속화하면서 한국이 선도 국가와의 격차를 좁히기가 더욱 어려워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로봇 기술의 ‘끝판왕’으로 불리는 휴머노이드 로봇을 완성하려면 배터리·모터·센서 등 핵심 부품은 물론 물리적 기기에 적용되는 피지컬 AI 기술이 필요하다. 저비용 고효율 AI 모델로 전 세계에 충격을 안긴 중국의 딥시크가 휴머노이드 로봇 고도화의 새로운 발판이 될지도 관심거리다. 실제로 유비테크는 딥시크 모델 활용 방안을 추진 중이다. 딥시크를 통해 인간과 로봇 간 상호작용, 복잡한 명령어 이해 등을 검증하는 단계로 알려졌다.
로봇 업계 관계자는 “10여 년 전 인간과 감정 교류가 가능한 로봇 페퍼를 선보였던 일본이 현재 휴머노이드 시장에서 존재감을 잃은 것은 휴머노이드 발달에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AI 개발 단계가 후진적이기 때문”이라며 “하드웨어뿐 아니라 소프트웨어·플랫폼·AI 등 다양한 분야의 융합과 혁신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중국 로봇 산업에 자금도 쏠리고 있다. 재활 로봇 등을 주로 개발한 푸리에는 지난달 8억 위안(약 1586억 원)의 투자를 유치했다. 모건스탠리에 따르면 올해 1월에만 중국 휴머노이드 로봇 기업을 대상으로 18건의 펀딩이 완료됐다. 이는 지난해 가장 많았던 11월의 13건을 앞선 것이다.
국내 로봇 업계에서는 상용화를 앞당길 수 있도록 체계적인 지원책이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중국에서는 공업정보화부가 올해 휴머노이드 로봇을 대량생산하고 2027년에는 세계 최고 수준을 달성하겠다는 목표를 천명했다. 이를 위해 17개 정부 부처와 중국 로봇 기업 및 대학이 참여하는 국가 휴머노이드 로봇 생태계 컨소시엄이 구축됐다. 미국에서는 버락 오바마 행정부 때부터 로봇 육성의 일환으로 국가로봇이니셔티브(NRI)를 추진하며 산학 협력을 이끌었다. △2011년 NRI 1.0 △2016년 NRI 2.0 △2020년 NRI 3.0 등 장기적인 지원이 로봇 기술의 고도화를 뒷받침했다는 분석이다.
관련 업계에서는 휴머노이드 로봇이 제조·물류 분야를 시작으로 헬스케어·서비스 산업 등에 빠르게 도입될 것으로 보고 있다. 2050년이 되면 미국에서만 6270만 대가 보급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이와 관련해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CEO)는 올해 1월 열린 CES 2025에서 “생성형 AI 다음은 피지컬 AI”라며 “로봇을 위한 챗GPT의 모멘트가 다가오고 있다”고 밝힌 바 있다.
이에 반해 한국은 제조업 강국이라는 타이틀이 무색할 정도로 신규 창업 기업의 성장성 측면에서도 미국과 중국에 크게 뒤처지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두산그룹과 삼성전자(005930)의 자회사로 있는 두산로보틱스와 레인보우로보틱스(277810)가 상장 시장에서 수조 원의 기업가치를 형성하고 있기는 하지만 이를 제외하고는 최근 10년간 설립된 로봇 관련 기업 중 유니콘이 된 곳은 전무한 상황이다. 올 1월 LG전자가 지분 51%를 인수한 베어로보틱스도 전체 기업가치는 1조 원에 크게 못 미친다.
전문가들은 휴머노이드와 같은 미래 로봇 산업의 본격적인 상용화 시점을 예측하기 어려운 만큼 민간보다는 정부 차원의 적극적인 지원이 필수적이라고 지적한다. 이를 통해 로봇 관련 인재를 양성할 수 있는 교육 인프라를 정비하고 연구개발(R&D) 지원을 확대하는 한편 창업이 용이한 환경을 조성해 로봇 산업 생태계를 활성화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성온 한양대 로봇공학과 교수는 “미국을 비롯해 중국이 대규모 자본을 활용해 적극적으로 로봇 산업 투자에 나서면서 상대적으로 국내 로봇 산업은 뒤처지고 있는 것이 현실”이라며 “정부를 비롯해 대기업들이 로봇 분야에 관심을 갖고 적극적인 투자와 함께 인재 육성에도 나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이 교수는 “로봇 산업이 빠르게 성장하기 위해서는 혁신 기술을 갖고 있는 창업 기업을 적극적으로 육성해야 한다”면서 “특히 휴머노이드에 집중하기보다는 우리나라가 잘할 수 있는 의료·국방·제조 분야에 특화된 로봇 산업 육성 정책을 펼칠 필요도 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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