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현동 주미 한국대사가 북한 핵 문제와 관련해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와 ‘북한 비핵화’를 일관되게 사용하기로 합의했다”고 밝혔다. ‘한반도 비핵화’보다 비핵화의 주체를 명확히 한 것으로 외교가에서는 한미 양국이 북한에 심리적 압박을 가하는 동시에 우리나라의 자체 핵무장 가능성을 열어둔 것 아니냐는 해석이 나왔다.
조 대사는 26일(현지 시간) 미국 워싱턴DC 한국문화원에서 특파원단 간담회를 열고 “과거 ‘북한 비핵화’와 ‘한반도 비핵화’를 혼용했지만 트럼프 행정부 출범 직후 미국과 협의를 통해 이같이 합의했다”고 말했다. 7일 미일 정상회담에 이어 한미·한미일 외교장관회담에서도 ‘북한 비핵화’라는 표현이 반영된 이유라고 설명했다.
조태열 외교부 장관과 마코 루비오 미국 국무장관은 15일 독일 뮌헨안보회의에서 열린 한미 외교장관회담 이후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 목표를 견지하며 향후 대북 정책 수립 및 이행 과정에서 긴밀히 공조해 나가기로 했다”고 밝힌 바 있다. 곧이어 개최된 한미일 외교장관회의에서도 ‘북한 비핵화’가 언급됐다.
두 용어는 기본적으로 북한의 핵무장을 해제한다는 의미다. 다만 ‘북한 비핵화’는 한국이 핵무기를 보유하고 있지 않다는 점을 감안, 북한의 핵 보유를 강조할 때 쓰인다. 미국이 과거 북한과의 협상에 초점을 맞춰 유화적인 제스처를 취할 때 ‘한반도 비핵화’를 종종 혼용했던 배경이다. 박원곤 이화여대 북한학과 교수는 “미국은 기본적으로 ‘북한 비핵화’를 사용해왔으나 트럼프 1기 시절 2018년 6월 미북 싱가포르 회담의 합의 조항에 ‘한반도 비핵화’가 담겼다”며 “이어 조 바이든 행정부에서도 ‘한반도 비핵화’로 표현하다가 이번에 다시 ‘북한 비핵화’로 명확히 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우리의 공식 입장도 ‘북한 비핵화’다. 이재웅 외교부 대변인은 27일 “불법 핵무기를 개발하고 있는 북한이 의무를 이행할 필요성을 명확히 한 표현이 북한 비핵화”라며 “미 행정부도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 추구를 언급해왔다”고 설명했다.
반면 북한은 ‘한반도 비핵화’를 고수해왔다. 북한의 ‘조선반도 비핵화’는 미국의 핵우산까지 배제해야 한다는 주장을 담고 있다. 미국의 핵전력이 한반도에 개입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북한은 2016년 ‘조선반도 비핵화의 5대 조건’을 통해 미국의 핵우산 배제에 더해 주한미군 철수도 요구했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한미가 ‘북한 비핵화’라는 방향성을 공식화한 것은 북한에 대한 심리적 압박으로 해석할 수 있다. 최원기 국립외교원 교수는 “적극적으로 해석하자면 미국이 한시적으로 핵전력을 한국에 전개했다가 되돌아가는 정도를 넘어 아예 배치하는 경우의 수까지 암시하며 북한을 심리적으로 압박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조 장관이 최근 자체 핵무장 가능성을 언급한 것도 북한에 대한 경고로 읽을 수 있다. 조 장관은 26일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자체 핵무장이) 시기상조인 측면이 있지만 논외는 아니다”라고 밝힌 바 있다.
다만 트럼프 대통령이 스스로 미 정부의 공식적인 정책 기조를 흔든 전력이 있다는 점에서 ‘북한 비핵화’ 기조가 제대로 유지될지는 미지수다. 최 교수는 “러시아·북한의 밀착 등으로 인해 북한 비핵화가 현실적으로 어려운 것 아니냐는 기류가 미국 내부적으로도 관측된다”며 “이른바 ‘스몰딜(기존 핵무기는 인정하고 북한 핵 동결)’에 대한 우려가 사라졌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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