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나빴던 기억이 좋았던 기억보다 더 강하다고 한다. 일반적인 심리학 이론에 따르면 좋았던 일과 나빴던 일을 1대4로 기억한다는 것. 그런데 지난 시즌 부상으로 신음하다 그 여파로 2018년 미국여자프로골프(LPGA) 투어 데뷔 후 처음으로 우승컵을 들지 못했던 고진영(30)은 지난해 기억을 다 지운 듯 “저는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이라고 했다.
고진영은 특히 싱가포르의 센토사GC 탄종 코스(파72)에서 열리는 HSBC 위민스 월드 챔피언십(총상금 240만 달러)에서는 더 행복한 사람이 된다. 대다수가 싱가포르 국적으로 구성된 팬클럽 ‘JY 언리미티드’가 있어서다. 27일 대회 1라운드 뒤 만난 고진영은 “싱가포르 현지 팬클럽이 있어서 올 때마다 기분 좋은 대회다. 그러다 보니 이 대회만 오면 자신감도 생기는 것 같다”고 말했다. 고진영은 이 대회 2022·2023년 우승자이기도 하다.
이 팬클럽은 고진영의 LPGA 명예의 전당 입회를 염원하는 의미에서 총 27명으로 구성됐다. 명예의 전당 입회에는 27포인트가 필요하다. 이날 대회장에서 만난 싱가포르 교포 출신 팬클럽 회원인 마크 김(42) 씨는 “2022년 고진영이 이 대회에서 우승한 뒤 팬클럽이 만들어졌다. 명예의 전당 입성을 바라는 의미에서 27명의 소수 정예로 팬클럽이 운영된다”면서 “1년에 포인트를 3점씩 쌓으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다. 이번 주 내내 고진영을 응원할 것”이라고 했다.
LPGA 투어 통산 15승, 역대 최장 기간(163주) 세계 랭킹 1위 기록을 보유한 고진영은 현재 명예의 전당 포인트 20점을 기록 중이다. 고진영은 “27명의 팬이 있는 만큼 명예의 전당 입성을 위해 노력해보겠다”면서도 “지금이 스무 살이었다면…”이라며 웃었다.
명예의 전당 입성을 위해서는 LPGA 투어 메이저 대회 한 번 이상 우승에 베어트로피(최소타수상), 올해의 선수 중 1개 이상을 수상해야 하며 LPGA 메이저 대회 우승(2점)과 일반 대회 우승, 베어트로피, 올해의 선수, 올림픽 금메달(이상 1점)을 통해 포인트를 쌓을 수 있다. 한국 선수로는 박세리(2007년), 박인비(2016년)가 명예의 전당 회원이다.
개막전 힐튼 그랜드 베케이션 대회 공동 4위와 이어진 파운더스컵 준우승 등으로 고진영은 올 시즌 재기를 예고했다. 그 원동력은 역시 ‘행복’. 그는 “예전에는 골프가 아니어도 나를 더 행복하게 만들 것이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며 “최근 골프가 인생에서 너무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래서 골프가 더 재미있고 더 잘하고 싶어졌다. 올해 조금 더 좋아진 계기가 이런 게 아닐까”라고 설명했다. 골프 안에서 행복을 찾으려 하는 사이 기량도 돌아오고 있다.
이날 고진영은 버디 1개와 보기 2개의 1오버파 공동 20위로 다소 무겁게 출발했다. 샷은 괜찮았는데 퍼트(34개)가 잘 안 풀렸다. 하지만 공동 7위(1언더파)의 양희영, 리디아 고(뉴질랜드) 등과 불과 2타 차라 남은 사흘에 따라 상위권 진입은 물론 역전 우승도 가능한 위치다.
개막전 우승자 김아림이 4언더파의 1타 차 선두로 나선 가운데 최혜진은 호주 교포 이민지 등과 2언더파 공동 3위다. 유해란·김효주도 고진영과 같은 공동 20위다. 지난해 우승자 해나 그린(호주)은 공동 37위(3오버파)로 출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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