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상반기 대기업 채용 시장이 지난해보다 더욱 어둡다는 전망이 나왔다. 경기 침체가 장기화하는 가운데 경영 환경을 둘러싼 불확실성이 증폭되자 기업 심리가 크게 위축된 탓으로 풀이된다. 세제 지원 등 기업의 고용 여력을 끌어올릴 정부의 지원책이 절실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27일 한국경제인협회가 발표한 ‘500대 기업 상반기 신규 채용 계획 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응답 기업 중 61.1%는 채용 계획을 아직 세우지 못했거나 계획이 없다고 답했다. 구체적으로 채용 계획이 미정이라고 밝힌 기업은 41.3%, 채용하지 않겠다는 기업은 19.8%였다. 1년 전 조사보다 채용 계획 미정인 곳이 3.9%포인트 늘었고 채용 계획이 없다는 기업은 2.7%포인트 증가했다. 한경협이 리서치앤리서치와 공동으로 진행한 이번 조사는 매출액 상위 500대 기업 중 126개사를 대상으로 이달 4일부터 13일까지 실시됐다.
이번 결과는 코로나19로 인한 불황이 이어지던 2021년 대기업 63.6%가 채용 계획이 없거나 미정이라고 답변한 후 최대치다. 2023년에는 54.8%, 지난해에는 54.5%가 동일한 응답을 했다.
신규 채용의 어려움은 건설·석유화학·철강 등 최근 불황을 겪고 있는 업종에 특히 집중됐다. 상반기 채용 계획 없거나 미정이라고 응답한 기업의 업종별 비중은 건설(75.0%), 석유화학·제품(73.9%), 금속(66.7%), 식료품(63.7%) 등의 순이었다. 한경협 측은 “경기 침체 장기화에 따른 수요 부진, 공급과잉 등의 영향으로 불황을 겪고 있는 기업들이 상반기 채용을 보수적으로 계획하고 있다”고 전했다.
채용 계획이 있다고 답변한 38.9%의 기업들도 고용 규모를 축소하는 모습이다. 채용 의사를 시사한 기업 중 규모 축소를 밝힌 기업은 28.6%로 지난해 상반기와 비교해 1.8%포인트 증가한 반면 채용을 늘리겠다고 답변한 기업(12.2%)은 3.9%포인트 감소했다.
기업들은 신규 채용을 꺼리는 가장 큰 이유로 ‘대내외 불확실성 확대, 수익성 악화 대응을 위한 경영 긴축(51.5%)’을 꼽았다. 수익성 회복을 기대하기 어려운 대내외적 환경에서 신규 채용에 따른 비용 부담을 감당하기 힘들다는 것이다. 또 글로벌 경기 침체 장기화와 고환율 등으로 인한 경기 부진(11.8%), 고용 경직성으로 경영 환경 변화 어려움(8.8%) 등을 꼽았다. 다만 신규 채용을 늘리겠다고 밝힌 기업은 경기 상황과 관계없이 미래 인재를 확보하기 위해서라는 응답이 83.3%에 달했다.
신규 채용 증진을 위한 정책 과제로는 ‘규제 완화를 통한 기업 투자·고용 확대 유도(39.7%)’가 가장 높은 응답을 기록했다. 이어 ‘고용 증가 기업 인센티브 확대(19.9%)’ ‘다양한 일자리 확대를 위한 고용 경직성 해소(13.5%)’가 꼽혔다. 이상호 한경협 경제산업본부장은 “경기 침체 장기화와 보호무역 확산에 대한 우려감으로 기업들이 긴축경영에 나서면서 채용 시장에 한파가 불어닥치고 있다”며 “기업 활력 제고를 위한 규제 완화에 주력하는 한편 통합투자세액공제 일몰 연장, 임시투자세액공제 대상 확대 등 기업의 고용 여력을 높이는 세제 지원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올 상반기 채용 시장 변화로는 수시 채용 확대(19.9%), 중고 신입 선호 심화(17.5%), 조직 문화 적합성 검증 강화(15.9%), 경력직 채용 강화(14.3%), 인공지능 활용 신규 채용 증가(13.5%) 등이 거론됐다. 특히 응답 기업의 10곳 중 6곳(63.5%) 이상이 수시 채용 방식으로 대졸 신규 채용을 진행하겠다고 답했다. 이는 지난해 같은 조사 대비 5.0%포인트 증가한 수치다. 수시 채용만 진행하는 기업은 26.2%, 공개 채용과 수시 채용을 병행하겠다는 기업은 37.3%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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