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연금 개혁, 반도체특별법 등 쟁점 현안을 논의하기 위해 예정됐던 2차 여야정 국정협의회가 열리지도 못한 채 무산됐다. 더불어민주당이 최상목 대통령 권한대행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의 마은혁 헌법재판관 후보자 미임명을 이유로 참석을 거부했기 때문이다. 민주당은 최 권한대행을 대화 상대로 인정할 수 없다고 주장하지만 제1 야당이 시급한 민생 현안들을 외면한 채 국정 혼란을 가중시켰다는 비판이 불가피해 보인다. 여야가 이견을 좁히지 못한 사안들은 당분간 평행선을 이어가거나 야당이 일방 추진할 가능성도 점쳐지고 있다.
2차 국정협의회가 예정된 28일 박찬대 민주당 원내대표는 회의 시작을 약 30분 남기고 입장문을 내 “국정협의회 참석을 보류하겠다”고 밝혔다. 이날 앞서 박 원내대표는 “오늘 오전까지 최 권한대행이 마 후보자를 임명하지 않는다면 대통령 권한대행으로 인정할 수 없다”며 협의회 보이콧 가능성을 시사했다. 하지만 최 권한대행이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자 그는 “최 권한대행이 헌법상 의무를 이행하지 않는 한 대화 상대로 인정하기 어렵다”면서 불참을 선언했다.
전날 헌법재판소는 국회가 선출한 마 후보자를 최 권한대행이 임명하지 않는 것은 국회에 대한 권한 침해라는 결정을 내놓았다. 최 권한대행은 헌재 결정문을 충분히 살피겠다며 당장 임명 의사를 밝히지 않았다. 이에 야당은 국정협의회를 압박 수단으로 활용해 신속한 임명을 촉구한 것으로 해석된다. 여당이 탄핵소추로 직무가 정지된 한덕수 국무총리가 복귀한 후 임명 여부를 판단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마 후보자에 대한 결정이 더 늦어질 수 있는 점도 고려한 것으로 보인다. 최 권한대행은 입장을 내고 “깊은 유감을 표한다”며 “빠른 시일 내에 논의의 장이 개최되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우원식 국회의장 역시 “이미 헌재가 결론을 낸 일을 놓고 국정협의회가 공전하는 것은 국민적 동의를 얻기 어렵다”며 유감을 표명했다.
이날 국정협의회에서는 여야가 연금 개혁안에 대한 타결을 시도할 예정이었지만 논의 자체가 불발되면서 결국 야당이 상임위원회인 보건복지위원회에서 단독 심사할 가능성이 나오고 있다. 현재 여야가 큰 틀에서 합의한 부분은 ‘내는 돈’인 보험료율을 현행 9%에서 13%로 올리는 것과 국회 연금개혁특별위원회를 구성하는 것이다.
하지만 ‘받는 돈’인 소득대체율을 놓고 국민의힘은 42~43%, 민주당은 44~45% 수준을 각각 주장하고 있다. 현행 소득대체율은 41.5%(2028년 40%)다. 당초 국민의힘은 자동조정장치 도입을 조건으로 44%까지 논의 가능성을 열어놓았다. 이날 최 권한대행이 발표하지 못한 국정협의회 모두발언에도 자동조정장치 도입에 대한 야당의 전향적인 입장 변화를 요청하는 내용이 포함됐다. 민주당의 경우 이재명 대표가 지난 국정협의회에서 ‘국회 승인’을 전제로 도입에 찬성하는 듯했지만 노동계가 강하게 반발하자 구조 개혁 때 논의하자며 사실상 원점으로 돌아간 상태다. 이에 따라 민주당이 복지위에서 연금 개혁을 처리할 경우 보험료율 13%, 소득대체율 44% 수준으로 통과시킬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다만 국민연금 특성상 세대별 입장 차가 크고 미래 세대에 민감한 문제인 만큼 당장 본회의까지 강행 처리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의견이 현재로서는 지배적이다. 야당이 일방적으로 밀어붙인다고 해도 대통령 재의요구권(거부권)에 막혀 국회로 되돌아올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굳이 무리해서 의결할 필요가 있겠냐는 견해 또한 있다. 이에 따라 추가 협상 과정을 지켜보며 속도 조절에 나설 것이라고 보는 시각도 많다.
‘반도체특별법’을 둘러싼 여야 대치 역시 지속될 것으로 전망된다. 민주당은 전날 주52시간 근로 예외 조항을 제외하고 특별법을 ‘신속처리안건(패스트트랙)’으로 지정해 처리하겠다고 밝혔다. 국민의힘은 야당의 방침에 아랑곳하지 않고 이날 지도부 차원에서 경기 화성의 반도체 부품 업체인 미코를 찾아 주52시간 예외 조항을 포함한 특별법을 관철시키겠다고 강조했다. 권영세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은 “근무시간 탄력적 운영은 산업계가 지속 요구한 사안이고 연구자의 자율성과 창의성을 존중하는 유연한 근무 환경이야말로 반도체 산업 재도약의 토대”라며 “주52시간 예외 적용을 비롯해 산업 현장의 요구 사항을 반영한 실효성 있는 반도체특별법이 조속히 마련되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의지를 다졌다. 김상훈 정책위의장도 “민주당과 협의해 연구개발(R&D)에 종사하는 분들이 유동적으로 더 집중해서 연구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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