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텔레콤(017670)이 국내 최대 규모의 초대형 인공지능(AI) 인프라를 확보해 갈수록 치열해지는 글로벌 AI 경쟁에 맞서기로 했다. 정부가 구상하는 국가 AI 인프라의 2배 규모를 구축하는 한편 컨테이너 박스처럼 조립식으로 3개월 만에 쉽게 만들 수 있는 모듈형 AI 데이터센터 신사업도 추진하는 등 통신사의 주특기인 인프라에서부터 AI 분야 우위를 다져나가겠다는 구상이다.
유영상 SK텔레콤 대표는 세계 최대 이동통신 전시회 ‘모바일월드콩그레스(MWC) 2025’ 개막을 하루 앞둔 2일(현지시간) 스페인 바르셀로나 피라그란비아 전시장 인근 호텔에서 기자간담회를 갖고 “글로벌 빅테크와 협력해 비(非)수도권 지역에 그래픽처리장치(GPU) 6만 장, 소비전력 100MW(메가와트)급의 하이퍼스케일(초대형) AI 데이터센터를 구축할 계획”이라며 “회사 AI 전략의 핵심 인프라가 될 것이며 향후 규모를 1~2GW(기가와트)로 확대해서 아시아·태평양 지역 거점화까지 구상하고 있다”고 밝혔다.
SK텔레콤의 AI 데이터센터는 국내 최대 규모를 자랑할 전망이다. 국내는 아직 AI 데이터센터 구축 초기 단계이며 정부가 2027년까지 최대 2조 5000억 원을 들여 짓겠다는 민관 합작 국가 AI 인프라인 ‘국가AI컴퓨팅센터’도 GPU 3만 장 규모에 그친다. 이것의 2배 규모 인프라를 민간 스스로 짓겠다는 것이다. 유 대표는 이 같은 초대형 AI 데이터센터 구축 기간을 3년 정도로 예상하고 3년 뒤에는 국가AI컴퓨팅센터 등을 더해 국가적으로 GPU 10만 개 규모의 자원을 동원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다.
AI 데이터센터는 기존 데이터센터와 달리 중앙처리장치(CPU)가 아닌 주요 AI 반도체인 GPU 위주로 구성된 연산 인프라다. 오픈AI·구글 등 빅테크들의 대형언어모델(LLM)과 AI 에이전트(비서) 개발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이를 구동할 AI 데이터센터가 경쟁 우위를 결정하는 핵심 요소로 부상했다. 이에 올해 들어 미국은 720조 원 규모의 ‘스타게이트’, 유럽연합(EU)도 300조 원의 ‘인베스트AI’ 등 자국 기업 지원을 위한 대규모 AI 인프라 투자 경쟁을 시작했다.
SK텔레콤은 그동안 데이터센터와 전국 단위 통신망 등 통신사로서 쌓은 대규모 인프라 구축·운영 노하우를 살려 AI 데이터센터 사업 진출을 추진해왔다. 지난해 말 가산 AI 데이터센터를 처음 개소하고 이를 통해 GPU를 빌려주는 클라우드 서비스(GPUaaS)를 출시했다. 특히 엔비디아로부터 최신 GPU를 공급받아 GPUaaS를 제공하는 람다와의 협력 강화를 통해 AI 데이터센터 구축의 최대 장애물인 전 세계적 GPU 수급난에 대응하겠다는 게 SK텔레콤의 전략이다. SK하이닉스의 고대역폭메모리(HBM), 리벨리온의 신경망처리장치(NPU) 등 그룹 계열사 및 협력사와의 시너지도 지속 추진 중이다.
유 대표는 이를 포함해 AI 데이터센터 기업간거래(B2B) 사업을 4가지 상품으로 구체화했다. GPUaaS와 하이퍼스케일과 함께 소규모 모듈형과 고객 주문형 AI 데이터센터 신사업도 추진하겠다는 것이다. 유 대표는 “모듈형 AI 데이터센터는 컨테이너 박스처럼 20~40kW(킬로와트)급을 3개월 만에 지을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며 “구축비용은 70%로 낮추고 전력 효율은 2배 높일 수 있어 신속한 GPU 확보가 필요한 스타트업이나 연구기관에서 수요가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설명했다. 고객 주문형은 한발 더 나아가 기업이 원하는 조건대로 AI 데이터센터를 주문 제작해주는 서비스로 공공기관과 대기업을 겨냥했다.
유 대표는 AI 모델과 서비스 고도화 계획도 밝혔다. 그는 “자체 개발 LLM ‘에이닷엑스’ 4.0 버전을 상반기 중 개발 완료해 연내 대화와 멀티모달(다중모델) 개발 등 경쟁력을 지속적으로 높일 계획”이라며 “에이닷엑스는 (에이닷 앱의) AI 통화요약에 사용되던 챗GPT를 100% 대체했고 정부 행정 서비스와 마케팅 등에 활용되며 하루 호출건수가 5000만 건을 돌파했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해 연구개발(R&D) 역량도 한층 강화한다. 유 대표는 “지난해 말 신설한 SK AI R&D센터는 데이터센터, 제조, 에너지, 반도체, 바이오 등 SK그룹 계열사 역량을 결집한 그룹 ‘AI 브레인’으로 키워나갈 것”이라며 “그 일환으로 판교 AI 데이터센터 테스트베드를 통해 그룹 계열사의 AI 데이터센터 관련 역량을 한데 모을 예정”이라고 했다.
AI 에이전트 서비스 에이닷은 740만 명이 월간활성이용자수(MAU)를 1200만 명으로, 이달 북미에 출시할 ‘에스터’는 다양한 국가에 진출해 글로벌 서비스로 키운다는 전략이다. 유 대표는 “기업용 에이닷인 ‘에이닷 비즈’를 출시하고 연내 SK그룹 21개 계열사에 적용함으로써 AI B2B 시장을 본격 공략하겠다”며 “에이닷을 타사 인기 앱에도 적용하는 다이버전스(확산) 전략도 추진한다”고 전했다.
에스터는 SK텔레콤이 도이치텔레콤, 소프트뱅크, 이앤, 싱텔 등 주요 통신사들과 맺고 있는 AI 동맹 ‘글로벌 텔코 AI 얼라이언스’ 협력을 통해 북미를 넘어 다른 국가에도 현지화, 진출해나간다는 구상이다. 지난해부터 추진한 글로벌 텔코 AI 얼라이언스 합작법인 설립도 이르면 이달 말 이뤄져 회원사 간 협력을 한층 더 공고히 할 것으로 기대된다.
SK텔레콤은 앤스로픽, 퍼플렉시티, 람다, 펭귄 등 주요 AI 스타트업에 일찍이 투자해 협력 관계를 구축해왔다. 유 대표는 “선제적으로 투자한 글로벌 AI 기업 4곳의 기업가치는 투자 시점 대비 3.1배 상승했다”며 “‘K-AI 얼라이언스’ 등 AI 스타트업 협력도 더욱 강화할 방침”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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