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취임 이후 각종 정책이 연일 쏟아지고 있다. 무기화된 미국의 관세는 상대를 가리지 않는다. 오로지 미국 국익만을 최우선으로 고려할 뿐이다. 전통적 우방이나 동맹도 예외는 아니다.
대부분의 국가는 미국의 관세 공격에 무방비 상태다. 특히 수출 의존도가 높은 국가일수록 그 타격이 더욱 크다. 한국이 대표적인 사례다. 한국 경제는 소비와 투자 등 구조적 내수 부진 속에서도 수출을 유일한 성장 엔진으로 여겨왔다. 그러나 미국의 관세 공격이 본격화되면 수출 부진이 불가피하고, 한국 경제 성장률이 단숨에 1%대 초반으로 떨어질 만큼 강력한 역풍을 몰고 올 것이다. 한국은행이 환율 걱정을 뒤로하고 기준금리 인하를 단행하는 것도 이러한 경제충격을 완화하기 위한 대응 중 하나다.
당연히, 트럼프 행정부의 일방통행식 관세정책 강행에 부분적으로 불편함을 느낄 수밖에 없다. 한국의 경제적 이익을 직접적으로 위협하는 조치일 뿐만 아니라, 보호무역주의 강화로 인해 글로벌 경제의 지속 성장에도 반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자유무역의 보편적 원칙을 거스르는 이러한 정책변화에 대한 우려가 커지는 것은 일견 자연스러운 일이다.
한국은 오랫동안 자유무역을 신봉해왔다. 그렇게 배워왔고, 이는 한국인의 경제적 사고방식에 깊숙이 자리 잡고 있다. 특히 수출 의존도가 높아질수록 자유무역 개념이 더욱 강하게 뿌리내렸다. 자유로운 교역이 국가 간 후생을 증가시킨다는 이론적 기반은 오랜 기간에 걸쳐 형성되었고, 마치 불변의 진리처럼 받아들여지고 있다. 일반화된 경제 작동원칙이 하루 아침에 부정당하는 데 대한 심리적 저항과 불안이 기저에 깔려 있는 것도 사실이다.
이를 두고, 중국이 이미 양명학으로 대체했음에도 조선은 뒤늦게까지 당시 중국으로부터의 수입이론인 성리학에 매달렸던 역사적 상황과 유사하다고 볼 수도 있다. 자유무역 이론을 전세계에 수출했던 미국이 이제는 이를 거둬들이고 새로운 실리를 취하고 있다는 흥미로운 역설이기도 하다. 주목해야 할 것은 이러한 대외경제 변화 속에서 한국의 대응 전략이 더욱 중요해졌다는 점이다.
현재 금융시장에는 글로벌 자금이동을 직접적으로 제한하는 토빈세(Tobin tax) 같은 장벽이 존재하지 않는다. 수출 중심의 실물 경제가 도전에 직면한 지금, 금융자본의 해외진출 전략을 구조적으로 재정비하고 전략적으로 접근할 필요가 있다.
축적된 금융자본을 활용한 해외자산 구축이 한국경제의 미래를 대비하는 핵심과제로 떠오르고 있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한국의 개인투자자들은 ‘서학개미’로 불리며 글로벌 금융시장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과거 일본의 ‘와다나베’ 부인처럼 해외투자에 적극 나서고 있으며, 최근 금융당국이 추진하는 국가간 이중과세 방지 세제 개편에 대한 관심이 그 어느 때보다 높아진 것도 이러한 움직임과 맞물려 있다. 고령화가 진행되면서 성장 가능성이 높은 해외시장과 기업에 대한 투자는 개인 차원에서도 불가피한 선택이 되고 있다.
개인에만 국한된 얘기가 아니다. 고령화가 심화되면서 연금과 보험 중심의 장기 자금이 급격히 증가하고 있으며, 국내에서 이를 소화하기 어려운 수준에 이르고 있다. 기관 투자자의 해외 자산 투자 수요 역시 필연적으로 증가할 수밖에 없다.
고령화 시대를 먼저 경험한 일본의 경우를 보면 ‘와다나베 부인’과 같은 개인투자자의 해외투자뿐만 아니라 기관 중심의 글로벌 인프라자산 투자 확대도 전략적으로 성공한 사례로 평가된다. 이를 한국에 적용한다면, 한국의 중소중견 및 대기업이 ESG 기반 인프라 수출을 확대하는 플랫폼을 정부가 마련하고 민간금융기관의 장기자금이 후속 투자할 수 있도록 하는 정책적 지원이 요구된다. 환경부 및 국토부 등 정부 부처가 중심이 되어 추진하고 있는 이러한 해외투자 민관협력 생태계를 더욱 강화하고 확장해야 할 필요가 있다.
특히 트럼프의 ‘미국 우선주의(America First)’ 정책에 맞춰 미국의 지속가능 인프라 구축에 한국의 장기 자금을 활용하는 방안을 고려해 볼 수 있다. 한국의 고령화 자금의 효율적인 운용 수단이 될 뿐만 아니라, 미국의 보호무역주의 예봉을 완화시키는 전략적 수단으로도 작용할 수 있다. 즉, 미국과의 협력 강화와 한국 금융 자산의 글로벌 확장을 동시에 도모하는 ‘일석이조’의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미국의 보호무역주의가 심화되는 환경에서 수출중심의 성장전략을 보완할 새로운 해법으로서, 민관협력 기반에서 금융자본이 지속 가능한 인프라 구축을 중심으로 하는 글로벌 확장 전략을 적극 추진한다면 한국 경제의 성장동력을 장기적으로 보강하는 방편이 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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