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출 기준 대형마트 2위인 홈플러스가 4일 기업회생절차에 돌입한 것은 MBK파트너스에 인수된 10년간 급변한 시장 상황 대응 및 적기 투자, 신규 점포 출점 등이 이뤄지지 못했기 때문으로 지적된다. 이로 인해 적자가 지속되며 재무 부담이 가중돼 유동성 위기에 부딪혔다는 것이 업계와 전문가들의 중론이다. 홈플러스가 기업회생에 돌입하면서 1만 9500명에 달하는 임직원들은 물론 물건을 납품해온 약 3000개의 협력 업체와 소비자들의 불안감도 높아지고 있다.
홈플러스는 MBK에 인수되기 전인 2014년(2014년 3월~2015년 2월)과 비교해 실적과 외형이 급격하게 쪼그라들었다. 매출은 인수 전 8조 5682억 원에서 2023년(2023년 3월~2024년 2월) 6조 9315억 원으로 감소했다. 같은 기간 영업이익은 2408억 원에서 -1994억 원으로 고꾸라졌다. MBK는 점포 폐점 및 세일앤드리스백(매각 후 재임대) 전략을 취했지만 이렇게 확보한 자금을 재투자하지 않고 차입금 상환 및 이자 비용으로 썼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통상 대형마트가 점포를 매각하고 난 돈은 차입금을 갚거나 신규 점포 오픈 등에 활용한다”며 “홈플러스는 2016년 파주운산점 이후 신규 출점한 점포가 없다”고 했다. 인수 전 MBK가 약속했던 1조 원의 신규 투자가 이뤄지기는커녕 회사의 외형만 쪼그라들었다는 것이다.
반면 자금난은 더 심화됐다. 홈플러스는 지난해 11월부터 단기 유동성을 마련하기 위해 일부 납품 업체를 대상으로 지연이자를 조건으로 대금을 한두 달 뒤 지급해주는 조치를 취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매출의 대부분이 현금으로 이뤄지는 유통업 특성상 이례적인 행보라는 지적이다. 수천 개에 이르는 협력 업체들이 ‘티메프 사태(티몬·위메프의 대규모 미정산)’를 떠올리며 불안해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업계의 다른 관계자는 “대형마트는 물건을 직매입해 운영하는데 이번 기업회생절차 개시로 중견·중소기업들이 홈플러스에 물건을 들이려고 할지가 관건”이라고 전했다.
이런 가운데 지난 달 28일 한국기업평가 등 신용평가사들이 홈플러스의 신용등급을 기존 ‘A3’에서 ‘A3-’로 내린 것이 결국 기업회생 신청의 기폭제기 됐다. 한기평은 이날 홈플러스의 회생 개시가 결정된 후 신용등급을 ‘D’로 재차 하향 조정했다.
유통 업계에서는 홈플러스가 코로나 이후 바뀐 소비 트렌드에 제때 적응하지 못하면서 근본적으로 경영난을 키웠다고 보고 있다. 홈플러스 노동조합도 이달 1일 성명을 통해 “온라인 소비 증가와 근거리·소량 구매 트렌드 확대 등 대형마트 산업의 구조적 변화에 대응하지 못한 채 단기적 자산 매각에 의존한 결과 기업의 미래 경쟁력이 약화됐다”고 꼬집었다.
지난해 유통 업체 전체 매출 가운데 절반은 온라인에서 나올 정도로 국내 유통 시장은 온라인을 중심으로 한 e커머스가 대세로 자리 잡았다. 대형마트의 비중은 11.9%로 전년보다 0.8%포인트 줄었다. 이 같은 트렌드에 기반해 지난해 쿠팡 매출액이 10조 원 뛰는 동안 홈플러스는 3000억 원가량 증가하는 데 그쳤다. 쿠팡이 국내 e커머스 시장에서 독주하고 알리·테무 등 중국 업체까지 한국 유통 시장에 공격적으로 진출하는 상황에서 기존에 유통 시장의 강자로 손꼽혀온 업체까지 문을 닫을 수 있게 됐다. 홈플러스의 기업회생절차 개시에 대형마트·백화점 등 다른 유통 업체들도 우려스럽게 보는 것 역시 같은 이유에서다.
홈플러스에서도 이 같은 시장 변화를 고려해 2022년부터 그로서리 특화 마켓인 ‘홈플러스 메가푸드마켓’을 선보였지만 역부족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한국신용평가는 “점포 매각으로 약화된 수익 기반과 이에 따른 고정비 부담 등의 수익성 제약 요인이 상존하는 상황에서 메가푸드마켓의 매장·상품 구조 변화, 비용 효율화 등 추진 중인 영업 전략 성과가 뒷받침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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