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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도 '관시'가 있다 [기자의 눈]

경제부 주재현 기자

미국 워싱턴DC에 위치한 미국 국회의사당 전경. AP연합뉴스




“알고 보니 인플레이션감축법(IRA) 가드레일 조항을 담당하는 미국 측 직원과 친분이 있는 사이였습니다. 편히 연락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큰 도움이 되더군요.”

조 바이든 정부 당시 IRA 세부 조항을 한국 기업에 유리한 방향으로 결정하도록 협상에 나섰던 한 관료의 회상이다. 상대측과 라포(감정적 교류)가 형성돼 있어 대화가 수월했다는 이야기다. 아는 사이라는 것만으로 모든 문제가 일사천리로 해결되지는 않았겠지만 원만한 협상의 물꼬를 트는 데는 분명 도움이 됐을 것이다.

전문가들은 중국의 ‘관시(關系)’ 못지않게 미국에서도 ‘축적된 관계’가 중요하다고 말한다. 한 번이라도 거래해본 상대에게 더 믿음을 주는 문화가 있어서다. 문제는 정부가 미국 주류 정치에서 벗어나 있던 도널드 트럼프의 사람들과도 그런 물밑 관계가 형성돼 있는지 불투명하다는 점이다. 한 통상 전문가는 “트럼프 행정부 주변에 지한파가 드문 것 같다”며 “막후에서 꼬인 협상의 매듭을 풀 관계자를 찾기 어려울 것”이라고 우려했다.



한발 늦은 건 입법부도 마찬가지다. 국회는 최근 여야 의원 150명이 참여하는 ‘한미의원연맹’을 창설하겠다고 밝혔다. 일본이 ‘일미의원연맹’을 구성한 것이 1984년이니 40년 뒤처졌다. 탄핵 정국 탓에 의회 외교의 중요성이 부각되자 미뤄둔 숙제를 하는 모습이다. 급히 추진하다 보니 미국 측은 누가 참여할지도 아직 미지수인 것으로 전해졌다.

한 전직 관료는 한국의 벼락치기식 외교의 한계가 드러난 것이라고 지적했다. 사전에 폭넓은 관계망을 형성해두는 것이 외교의 기본인데 한국은 그러지 못했다는 분석이다. 그는 “일본만 해도 10~20년을 내다보고 유망한 정치 신인에게 접근하는 치밀함을 보인다”며 “외교관뿐 아니라 실무 관료와 학계·시민단체가 각국과 교류할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문제가 생겼을 때 그제야 만나자고 하지 말고 미리 다방면에 걸쳐 관계를 형성해두자는 말이다. 안면은 미리 터둬야 제 쓸모를 다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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