홈플러스가 사모펀드(PEF)인 MBK파트너스에 인수된 지 10년 만에 기업회생절차(법정관리)를 밟게 됐다. 과도한 차입으로 인한 이자비용에다 온라인 위주로 재편된 시장 상황의 대응 실패로 인한 영업손실 등으로 재무 부담이 가중돼 유동성이 악화된 데 따른 조치다. 한때 이마트와 양강구도를 형성하며 대형마트의 양대산맥 역할을 했던 홈플러스가 법정관리에 들어가면서 유통업계에 긴장감이 커지고 있다.
MBK·홈플, 신용등급 하락 예상 못했나
홈플러스에 따르면 서울회생법원은 4일 0시 3분 홈플러스가 회생절차 신청서를 제출한 지 11시간 만에 개시 결정을 내렸다. 법원이 신청 당일 회생 개시 결정을 한 것은 이례적이다. 법원은 ‘사업 계속을 위한 포괄 허가 결정’도 함께 발령해 홈플러스의 대형마트·익스프레스·온라인 등 모든 채널 영업은 정상적으로 이뤄지도록 했다. 또 별도의 관리인을 선임하지 않고 기존 대표와 임원진이 그대로 경영하도록 했다.
이번 조치는 홈플러스의 신용등급이 하락하면서 비롯됐다. 지난달 28일 신용평가사들은 홈플러스의 기업어음과 단기사채 신용등급을 ‘A3’에서 ‘A3-’로 내렸다. 홈플러스가 영업 활동 효율화, 주요 점포 리뉴얼을 통한 수익성 개선을 추진하고 있으나 의미 있는 수준의 집객력 및 매출 회복이 쉽지 않다고 판단되면서다. 이는 홈플러스뿐만 아니라 MBK에서도 예상하지 못했던 것으로 점쳐진다. 김광일 MBK 부회장은 “갑작스러운 신용등급 하락 때문에 단기 유동성에 대한 방어 차원에서 기업회생을 신청한 것”이라며 “단기 자금 조달이 어려워진 게 아니라 어려움이 예상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신규 점포도 2016년 마지막
MBK와 홈플러스는 이번 법정관리가 사전예방적인 차원에서 이뤄진 것이라고 강조하고 있다. 신용등급 강등으로 단기 유동성이 나빠져 오는 5월이면 납품대금을 정산하지 못할 것이 우려된 데 따라 미리 법정관리 절차를 밟아 협력업체 정산대금 및 임직원의 월급을 정상적으로 지급하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유통 업계와 홈플러스 노조는 MBK가 홈플러스를 인수한 후 회사의 경영난이 심화됐다고 반박한다. 실제로 홈플러스는 MBK에 인수되기 전인 2014년(2014년 3월~2015년 2월)과 비교해 실적과 외형이 급격하게 쪼그라들었다. 매출은 인수 전 8조 5682억 원에서 2023년(2023년 3월~2024년 2월) 6조 9414억 원으로 감소했다. 같은 기간 영업이익은 1994억 원에서 -1994억 원으로 고꾸라졌다. MBK는 점포 폐점 및 세일앤드리스백(매각 후 재임대) 전략을 취했지만 이렇게 확보한 자금을 재투자하지 않고 차입금 상환 및 이자 비용으로 썼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통상 대형마트가 점포를 매각하고 난 돈은 차입금을 갚거나 신규 점포 오픈 등에 활용한다”며 “홈플러스는 2016년 파주운산점 이후 신규 출점한 점포가 없다”고 했다. 인수 전 MBK가 약속했던 1조 원의 신규 투자가 이뤄지기는커녕 회사의 외형만 쪼그라들었다는 것이다.
반면 자금난은 더 심화됐다. 홈플러스는 지난해 11월부터 단기 유동성을 마련하기 위해 일부 납품 업체를 대상으로 지연이자를 조건으로 대금을 한두 달 뒤 지급해주는 조치를 취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매출의 대부분이 현금으로 이뤄지는 유통업 특성상 이례적인 행보라는 지적이다. 수천 개에 이르는 협력 업체들이 ‘티메프 사태(티몬·위메프의 대규모 미정산)’를 떠올리며 불안해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업계의 다른 관계자는 “대형마트는 물건을 직매입해 운영하는데 이번 기업회생절차 개시로 중견·중소기업들이 홈플러스에 물건을 들이려고 할지가 관건”이라고 전했다.
쿠팡 10조 벌 때 대형마트는?
유통 업계에서는 홈플러스가 코로나 이후 바뀐 소비 트렌드에 제때 적응하지 못하면서 근본적으로 경영난을 키웠다고 보고 있다. 홈플러스 노동조합도 이달 1일 성명을 통해 “온라인 소비 증가와 근거리·소량 구매 트렌드 확대 등 대형마트 산업의 구조적 변화에 대응하지 못한 채 단기적 자산 매각에 의존한 결과 기업의 미래 경쟁력이 약화됐다”고 꼬집었다.
지난해 유통 업체 전체 매출 가운데 절반은 온라인에서 나올 정도로 국내 유통 시장은 온라인을 중심으로 한 e커머스가 대세로 자리 잡았다. 대형마트의 비중은 11.9%로 전년보다 0.8%포인트 줄었다. 이 같은 트렌드에 기반해 지난해 쿠팡 매출액이 10조 원 뛰는 동안 홈플러스는 3000억 원가량 증가하는 데 그쳤다. 쿠팡이 국내 e커머스 시장에서 독주하고 알리·테무 등 중국 업체까지 한국 유통 시장에 공격적으로 진출하는 상황에서 기존에 유통 시장의 강자로 손꼽혀온 업체까지 문을 닫을 수 있게 됐다. 홈플러스의 기업회생절차 개시에 대형마트·백화점 등 다른 유통 업체들도 우려스럽게 보는 것 역시 같은 이유에서다.
홈플러스에서도 이 같은 시장 변화를 고려해 2022년부터 그로서리 특화 마켓인 ‘홈플러스 메가푸드마켓’을 선보였지만 역부족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한국신용평가는 “점포 매각으로 약화된 수익 기반과 이에 따른 고정비 부담 등의 수익성 제약 요인이 상존하는 상황에서 메가푸드마켓의 매장·상품 구조 변화, 비용 효율화 등 추진 중인 영업 전략 성과가 뒷받침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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