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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충은 없다…운동할 권리·열린 선수촌 부지런히 만들게요”[이사람]

◆43세 최연소 대한체육회장 유승민

끝없는 변신 속 '헌신'…스포츠 대통령까지 도약

학생선수 '최저학력제' 철폐 추진…선택권 필요

K컬처와 윈윈전략, 후원금 年 500억 유치 목표

진천선수촌 투어도 개발…"2~3년뒤 결실 맺을것"





“한 분야만 파고드는 것도 물론 가치 있는 일이지만 좀 더 넓고 다양한 경험을 하는 데 저는 더 끌렸어요. 후배들과 소주 한잔할 때도 탁구 얘기만 하는 것보다는 여기는 이렇고 저기는 저렇더라 얘기해줄 수 있으면 좋잖아요.”

올림픽 탁구 금메달리스트 출신의 엘리트 운동선수에서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선수위원으로, 그리고 대한민국 체육을 총괄하는 ‘스포츠 대통령’ 대한체육회장에 역대 최연소(43세) 당선까지. 유승민의 변신은 끝이 없다. 그리고 그 변신의 폭은 늘 예상을 훌쩍 뛰어넘는다.

최근 서울 서초구의 개인 사무실에서 만난 유 회장은 ‘변신에 다 계획이 있었던 것이냐’는 물음에 ‘폭’에 대해서 얘기했다. “지도자도 해봤지만 우물 안 개구리였다는 생각이 커졌어요. 디테일한 계획이 있었던 것은 아니어도 뭔가 폭을 넓혀보고 싶다는 생각이 강했죠. 그 생각을 따라서 물 흘러가듯 왔더니 지금 여기예요.”

스포츠 행정이 적성에 꼭 맞는 일은 아니었다고. 유 회장은 “맡은 일을 하다 보니 하나같이 모든 것을 걸고 헌신하지 않으면 안 되는 일들이었다. 물질적 보상은 없지만 책임은 엄청난 자리였다”며 “그래서 대충 할 수가 없었고 대충 하지 않으니까 또 인정을 받더라”고 돌아봤다.

체육회장 4년 임기는 지난달 28일 시작됐다. 이제 막 업무 파악을 하는 시기여야 하지만 유 회장은 이미 그 자리에 있던 사람 같다. 1월 선거에서 3선에 도전했던 이기흥 회장을 제치고 당선된 유 회장은 취임까지 40여 일 동안 그야말로 광폭 행보를 계속했다.

당선 당일 토마스 바흐 IOC 위원장과 통화하며 긴밀한 협력을 약속받았고 며칠 뒤부터는 체육 현장 곳곳을 누볐다. 탁구 국가대표 선발전이 열린 충북 제천을 찾았고 다음날은 경남 함안으로 내려가 훈련 중인 여자축구 선수들을 격려했다. 국회를 찾아 문화체육관광위원회 소속 의원들을 만나고 우원식 국회의장과 면담을 하는가 하면, 하얼빈 동계아시안게임 현장에서는 유인촌 문화체육관광부 장관과 수시로 얼굴을 맞댔다. 아시아올림픽평의회(OCA) 관계자들은 물론 차기 IOC 위원장 후보자도 만났다. 귀국 후에는 진천 국가대표선수촌으로 달려가 지도자들과 간담회를 가졌다. 종목을 불문하고 각종 대회와 행사에는 꼭 ‘프로 참석러’ 유 회장이 있었다. 새벽부터 밤 늦게까지 움직여야 했고 이동하는 동안 쪽잠을 자야 했다. 그는 “집에 있는 시간은 하루에 3~4시간밖에 안 되는 것 같다”면서도 표정은 밝았다. “체육계뿐 아니라 각계각층에서 기대가 많다는 것을 확실하게 느낍니다. 그 기대를 어떻게 하면 충족시킬 수 있을까 계속 고민하고 있어요.”

유 회장의 역점 과제로 첫손을 다투는 것은 ‘학교 체육 살리기’와 ‘돈 버는 체육회 만들기’다. 먼저 엘리트스포츠와 생활체육의 근간인 학교 체육. “운동선수가 되고 싶어하는 아이들의 꿈과 목표가 자랄 수 있도록 학교가 기회와 환경을 제공해줘야 한다”고 유 회장은 목소리를 키웠다. 이를 위해 가장 시급하게 재검토돼야 하는 제도로 그는 최저학력제(주요 과목 성적이 일정 수준을 넘지 못하면 다음 학기 대회 출전 제한)와 수업일수 강제를 들었다. “아이들이 오후 5시가 돼야 운동장에 나오니 도저히 가르칠 수가 없다는 축구 지도자의 토로가 떠올라요. 장시간 굳은 근육을 안 풀 수는 없고 몸 풀다 보면 어두워지니 언제 운동을 하냐는 거죠. 제대로 운동도 못하게 해놓고는 막상 일본에 경기 지고 중국이랑 대등해지고 그러면 화나서 비난하잖아요.”

이른바 ‘스포츠 미투’가 거세던 시절에 전임 정부는 스포츠 인권과 관련한 대책들을 쏟아냈다. 체육계 비리를 근절할 카드로 합숙 훈련 폐지를 꺼냈고 학습권을 보장해야 한다며 최저학력제를 강화했다. 주중에는 공부하고 대회는 주말에 나가야 한다고 규정했다. 중간에서 방향을 잃은 것은 학생 선수와 학부모들이었다. 갑작스러운 변화에 운동선수의 꿈을 포기하는 사례가 속출했다.



유 회장은 “현장의 선수와 지도자, 학부모는 법이 언제 어떻게 바뀌었는지도 모른다. 어느 장단에 춤을 춰야 할지 모를 정도로 자주 바뀌고 갈팡질팡하는데 피해는 고스란히 현장이 받는다”며 “이런 반복은 반드시 멈춰야 하며 그러려면 체육계 내부의 프로토콜과 시스템을 더 철저하게 갖추는 수밖에 없다”고 했다. “어떤 일이 생겼을 때 자체 대응이 빠르면 외부에서 빈대 한 마리 잡으려다 초가삼간 태우는 식의 정책들이 마구잡이로 나오지는 않을 거라는 생각이에요. 즉각적인 대응 체계를 구축해야 하는데 대응이라는 것에는 개선까지 포함해야 합니다.”

‘공부하는 운동선수’라는 지향에 대해서는 어떤 생각을 갖고 있을까. 유 회장은 “흔히 미국처럼 공부 잘하고 운동도 잘하는 선수가 우리나라에서는 왜 안 되냐고 한다. 하지만 미국에서는 공부가 조금 부족하더라도 스포츠를 잘하면 하버드·예일·스탠퍼드대를 간다. 우리는 그런 제도가 없다”며 “어쩌면 ‘공부하는 운동선수’라는 표현 자체에 편견이 들어 있다고 볼 수 있다. 똑같은 학생인데 운동을 전문적으로 하는 학생일 뿐이다. 프레임에 가둘 게 아니라 예를 들어 6교시 수업 중에 3교시까지 듣고는 시간을 매니지먼트하면서 잘하는 분야에 투자할 수 있게 융통성과 선택권을 주면 좋겠다고 주장하는 것”이라고 했다.

덧붙여 “교육부 장관님, 부처 관계자분들, 교육위원회, 교육청, 교육감님들 다 찾아 뵐 것이다. 체육 현장의 목소리를 전하는 한편 그분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함께 올바른 방향을 찾도록 토의해나가면 좋겠다”고 했다.



유 회장은 대한탁구협회장 시절 ‘탁구 1호 영업사원’을 자처하고 5년간 120억 원에 이르는 기업 후원을 유치했다. 체육회장으로서는 “연간 500억 원이 목표”라고 했다. “탁구협회장 때는 기업이 원하는 게 뭔지 먼저 파악하고 기업이 가질 수 있는 권리를 잘 제시해 후원의 명분과 근거를 마련해드린 게 주효한 것 같다”는 그는 “연 500억 원이 쉽지는 않은 숫자지만 목표는 크게 잡아야 한다. K팝 등 K컬처와 교류를 통한 윈윈이 이뤄지고 전국체전·소년체전 등 우리가 가진 플랫폼 또는 지적재산권(IP)을 통한 사업이 확장하면 불가능하지 않다”고 강조했다.

유 회장이 생각하는 K스포츠 마케팅의 최전선에는 선수촌이 있다. 해외에서 진천선수촌은 이미 한국의 빼놓을 수 없는 명소로 통한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실제로 해외 인사들을 대상으로 한 ‘버기카 투어’도 종종 진행한다. 이런 선수촌 투어를 일반인 대상 상시 유료 프로그램으로 키우려는 게 유 회장의 계획이다. “우리나라의 청와대나 스위스 로잔의 IOC 올림픽 하우스처럼 인기 시설로 거듭날 가능성이 충분합니다. 선수 교육 시설인 챔피언하우스, 사우나 등 디테일한 휴식 공간, 최신 장비를 갖춘 의무실 등 문화재로 지정해도 될 정도의 수준을 우리 선수촌은 갖추고 있어요. 그런 곳에서 선수들 훈련을 직접 보고 선수촌 프로그램을 체험하고 선수 식당에서 국가대표 선수들이 먹는 메뉴를 먹어보는 것은 특별한 일이잖아요. 국민과 함께 호흡하는 체육회라는 지향점과도 잘 맞아 떨어지고요. 물론 선수들의 프라이버시를 침해하지 않는 선에서 진행해야죠.”

앞으로 4년간 체육회장으로서 권한보다는 ‘책임’만 바라보고 뛰겠다는 유 회장은 “환희와 감동, 행복과 설렘을 드리는 스포츠 본연의 가치로 한국 체육이 재도약할 수 있도록 응원 부탁 드린다”는 말을 독자들에게 전했다. “2~3년 지나면 제가 추진하려고 했던 일들의 결과물이 드러날 거예요. 그때 ‘어, 진짜네, 진짜였네’라는 반응이 나오도록, 걱정은 기우였다는 말을 들을 수 있도록 부지런히 달리겠습니다.”

He is…

△1982년 인천 강화 △2004년 아테네 올림픽 탁구 남자단식 금메달 △2007년 경기대 스포츠경영학 학사 △2008년 베이징 올림픽 남자단체 동메달 △2012년 런던 올림픽 남자단체 은메달 △2012년 경기대 대학원 체육학 석사 △2016년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선수위원 △2018년 평창 동계올림픽 선수촌장 △2019년 아시아올림픽평의회(OCA) 집행위원, 대한탁구협회장 △2025년 대한체육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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