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이 고려아연(010130) 임시 주주총회 효력 정지 가처분 소송에 대해 부분 인용 결정을 내리면서 영풍(000670)·MBK파트너스가 고려아연 이사회 진입에 속도를 낼 것으로 전망된다. 당장 이달 말 열리게 될 정기 주총에서 의결권이 살아나게 된 영풍·MBK 측은 다수의 신규 이사 후보를 내세워 무더기 선임에 나설 계획이다. 다만 집중투표제 적용으로 인해 단번에 이사회 장악은 힘들어지면서 최윤범 고려아연 회장과 경영권 분쟁은 장기전으로 흐를 가능성이 점쳐진다.
7일 서울중앙지방법원은 지난 1월 23일 열린 고려아연 임시 주총에서 가결된 안건 중 집중투표제 도입을 제외한 이사 수 19인 상한 설정, 이사 7인 선임 등 다른 모든 결의 사안의 효력을 정지했다. 법원은 집중투표제에 대해서는 “영풍 등의 의결권이 제한되지 않았더라도 찬성률이 69.3%로 가결 요건에 해당한다”며 최 회장 측의 손을 들어줬다.
고려아연 정기 주총은 이달 28일 혹은 31일로 예상되며 이때부터 집중투표제가 도입될 예정이다. 이사 수 상한 제한이 없어진 만큼 영풍·MBK 측은 이사 후보를 17명가량 올린 뒤 10명 이상 선임할 목표인 것으로 전해졌다. 현재는 장형진 영풍 고문을 제외한 나머지 이사 11명이 최 회장 측으로 1대 11의 구도다.
현재 영풍·MBK의 지분율은 총 40.97%로 최 회장 측의 17.5%를 앞선다. 한화 등 재계 우군들이 모두 최 회장 측에 선다 해도 지분율은 30%대 초중반에 불과한 상황이다. 자기주식을 제외한 의결권 기준 지분율도 영풍·MBK가 46.7%로, 최대 39% 정도로 추정되는 최 회장 측을 크게 앞서고 있다. 최 회장 측이 재계 지분을 모두 흡수해도 영풍·MBK 측보다 적은 수의 이사 선임만 가능해 보인다. 다가올 정기 주총을 거치면 고려아연 이사회는 영풍·MBK 총 10석 이상, 최 회장 측은 기존 이사들을 합해 12~13석으로 재편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최 회장 측 신규 선임 이사 7명이 이탈한 데다 여기에 박기덕 사장 등 기존 이사 5명의 임기까지 이달 17일 만료된다. 최 회장 측 이사 수는 정기 주총을 앞두고 5명까지 대폭 줄어들 수 있다. 올해 안으로 영풍·MBK가 추가로 임시 주총을 열게 되면 이사회 재편은 더 가속화할 수 있다. 지분율이 높은 영풍·MBK가 주총을 추가로 열수록 이사 수를 계속 늘려가는 게 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집중투표제가 도입되면 신규 이사 후보로 17명이 추천된 경우 부여되는 17표를 몇 명의 후보에게 몰아줄 수 있기 때문에 과반의 지분을 보유한 주주라도 모든 이사 후보를 이사회에 진입 시키기 어렵다. 집중투표제는 이사를 선임할 때 선임하는 이사 수만큼의 의결권을 주주에게 부여하고 원하는 후보에게 몰아주는 방식으로 투표할 수 있게 하는 제도로 지분에서 열위에 놓인 최 회장 측이 유리하게 활용할 여지가 있다.
법원이 이번 가처분 소송을 통해 영풍·MBK 주장을 대부분 받아들이면서 최 회장 측이 시도한 ‘상호주 제한’ 조치에 중대한 하자도 인정됐다는 평가가 나온다. 검찰과 공정거래위원회의 조사가 본격적으로 시작되면 최 회장 측에 불리한 결과가 나올 수 있다는 전망도 있다.
영풍·MBK는 “고려아연의 100% 지배회사인 선메탈스코퍼레이션(SMC) 명의로 이뤄진 영풍 주식의 취득 행위는 상호출자제한기업집단 내 계열회사 간 상호 출자 금지를 회피한 탈법행위에 해당한다”고 설명해왔다. 법원 역시 SMC는 ‘국내 상법과 호주 회사법에 비춰 주식회사가 아닌 유한회사’라면서 “(주식을 양도할 수 없는) 유한회사 상호 출자로 회사의 지배구조가 왜곡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날 영풍은 보유 중인 고려아연 526만 2450주(25.4%)를 신설 유한회사 와이피씨에 현물 출자하면서 고려아연과의 순환출자 고리를 완전히 끊었다.
영풍·MBK는 이날 법원 결정이 나오자 “고려아연 최 회장 측 불법행위가 철퇴를 맞았다”면서 “공정한 정기 주총을 통해 고려아연의 기업 거버넌스 정상화를 기대한다”고 밝혔다.
일각에서는 최 회장 측이 안건 상정 없이 정기 주총을 끝내는 방식으로 파행을 유도할 가능성이 있다는 관측도 제기했다. 다만 최근 홈플러스 기업회생절차로 MBK에 대한 여론이 악화하는 것이 국민연금 등 여타 주주들에게 불리하게 작용할 수 있다.
한편 1월 22일 고려아연 임시 주총을 하루 앞두고 고려아연은 손자회사 SMC를 통해 최 회장 일가 및 영풍정밀이 보유하고 있는 영풍 지분 10.3%(19만 226주)를 575억 원에 인수했다. 고려아연은 상법에 따라 상호주 제한 조치가 즉각 적용된다면서 영풍이 보유한 고려아연 의결권(25.42%)의 행사를 임시 주총에서 막았다. 그 결과 이사 수를 최대 19명으로 제한하는 안건과 최 회장 측이 내세운 신규 이사 후보 7명이 모두 선임됐다. 그러면서 고려아연 이사회가 최 회장 측 18명, 영풍·MBK 측 1명으로 재편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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