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8년 10월 29일 전 세계의 시선이 삼성전자(005930) TV로 쏠렸다. 최고령 우주비행사인 존 글렌 미국 상원의원이 탑승했던 우주왕복선 디스커버리호 발사 장면이 세계 최초로 상용화된 삼성전자의 디지털 TV를 타고 송출된 것이다. 10년간 500억 원에 달하는 연구개발(R&D) 투자와 500여 명의 연구 인력이 기술 개발에 매달린 결과였다.
디지털 TV의 첫 상용화는 흑백 TV에서 60여 년, 컬러 TV에서 30년가량 늦었던 삼성전자가 경쟁 업체를 모두 따돌리고 신기술 고지를 선점한 상징적 순간이었다. 이후 삼성전자는 2006년 글로벌 TV 시장에서 ‘전자 왕국’ 소니를 꺾고 1위에 등극했으며 지난해까지 19년 연속 부동의 1위를 지키고 있다.
◇빨리 배워 독자 기술로 넘자…‘24시간 풀가동’=삼성전자는 수십 년 업력 차를 따라잡으려 투트랙 전략을 썼다. 앞선 기업의 기술을 집약적으로 전수받는 동시에 시장 판도를 바꿀 독자 기술 개발에 나섰다.
삼성전자는 1969년 일본 산요전자와 합작해 TV 사업을 시작했다. 첫해 매출은 4000만 원에 불과했고 삼성이 전자사업을 시작한 것 자체를 부정적으로 보는 여론도 만만치 않았다. 그러나 엔지니어들은 이에 굴하지 않고 직접 외국산 TV를 뜯어보고 조립하며 부품을 연구해 독자 기술을 축적했다.
성과는 빨랐다. 삼성전자는 사업에 착수한 지 2년 만인 1971년 파나마로 흑백 브라운관 TV를 수출하며 해외에 첫발을 내디뎠다. 이듬해에는 독자 기술로 만든 브라운관 TV를 처음 출시했다. 1975년에는 예열 없이 화면이 바로 켜지는 순간 수상 방식 브라운관인 이코노TV가 국내 시장점유율 40%를 차지하며 1위를 기록했다. 석유 파동 여파로 에너지 절약 움직임이 일던 소비자 수요를 정확히 파악한 결과였다.
공장도 일사불란하게 대응했다. 1970년대 말에서 1980년대까지 삼성전자 TV 제조 라인은 24시간에 가까운 풀가동 체제를 유지했다. 빠르게 늘어나는 수요를 적기에 맞추기 위한 필사의 노력이었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반도체처럼 ‘불이 꺼지지 않는 공장’을 만들어 납기를 맞췄다”며 “TV를 필두로 전자 산업을 키우려던 삼성의 의지가 매우 강했다”고 전했다.
◇기술과 품질 양 날개로 디지털 TV 1등=기술과 품질 양 날개로 일본 소니를 꺾겠다는 이건희 선대회장의 의지도 TV 사업 1위의 밑거름이 됐다. 선대회장은 2004년 영상디스플레이(VD) 사업부와 액정표시장치(LCD), 반도체 부문, 삼성SDI를 모아 ‘TV 일류화 위원회’를 꾸리며 “소니를 꺾고 1위를 하라”고 주문했다. 그는 아날로그 시대는 늦었지만 디지털 시대는 출발선이 같다며 “삼성전자가 기술로 소니를 뛰어넘을 수 있다”고 임직원들을 독려했다.
손욱 전 삼성종합기술원장은 “삼성전관 사장 시절 브라운관 시장점유율이 25%로 1위를 달성해 선대회장께 보고드렸더니 별다른 반응 없이 ‘그래도 기술은 소니라고 하지’라고 반문하셨다”면서 “궁극적으로 기술이 일류가 돼야 한다고 당부한 것”이라고 말했다.
1990년대 소니를 꺾는다는 발상은 삼성전자 임직원들도 기대할 수 없는 신화였다. 소니 TV가 100만 원에 팔리면 삼성 TV는 60만 원대 가격에 팔릴 만큼 시장 격차는 엄청났다. 하지만 선대회장의 의지와 비전을 실천하려 삼성 경영진은 반도체 사업부까지 우수 인재 500여 명을 선발해 TV 사업에 투입, TV에 들어가는 핵심 칩을 독자 생산할 수 있었고 이는 오늘날 삼성 TV의 가장 큰 경쟁력이 됐다.
그러면서 탄생한 제품이 삼성전자에 첫 세계 1위를 안겨준 보르도 LCD TV다. 이 제품은 스피커를 TV 밑으로 내리고 TV 모서리를 곡선으로 처리하는 세련된 디자인과 향상된 명암비, 시야각으로 시장의 판도를 뒤집었다. 2005년까지 세계 TV 시장을 석권하던 소니는 이듬해 삼성전자(14.6%)에 점유율이 2.6%포인트 뒤지며 2위로 내려앉았다. 한 번 1위에 오른 삼성 TV는 이후 거침없이 시장을 주도하며 지금까지 단 한 차례도 왕좌를 내주지 않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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