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계의 저승사자로 통하는 국세청 조사4국이 MBK파트너스에 대한 세무조사에 착수하면서 홈플러스 정상화를 위한 정부의 압박이 본격화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국세청 사정에 밝은 세무 업계의 한 관계자는 11일 “조사4국이 나섰다면 업계 내부의 제보 등 상당한 증거를 확보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그동안 MBK에 대한 정기 세무조사는 국세청 국제조사과가 맡아왔으나 이번에는 ‘칼잡이’가 바뀌어 조사 강도가 더 세질 것이라는 분석이다.
그동안 정부와 금융 당국 내부에서는 MBK에 대한 불만이 고조돼왔다. 금융 당국과 사전 교류 없이 군사작전처럼 기업회생절차를 신청한 뒤 구조조정의 기본이라고 할 수 있는 대주주 자구책 등도 전혀 내놓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정부의 한 고위 관계자는 “홈플러스는 급여 분포상 서민 일자리라고 봐야 하고 현재 직접 고용된 임직원만 2만여 명에 달해 경제 전후방에 미치는 영향이 너무나 크다”며 “MBK가 책임 있는 조치를 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국세청은 일단 MBK의 최근 투자금 회수 과정을 집중적으로 들여다볼 것으로 예상된다. MBK는 10년 전 막대한 차입금으로 홈플러스를 인수한 뒤 그동안 알짜 점포 매각 등으로 빚을 갚고 배당을 받는 방식으로 투자 원금 회수에 주력했다. 국세청은 이 과정에서 MBK가 세금을 제대로 신고했는지, 탈루한 혐의는 없는지 살펴볼 것으로 알려졌다. 조사 대상이 MBK가 2020년 이후 투자한 기업에 대한 투자금 회수 과정으로 확대될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2020년 세무조사 이후 국내 투자 기업 중에서는 1조 1800억 원에 인수했던 두산공작기계(DN솔루션즈)를 2조 4000억 원에 매각했는데 이 사례도 해당할 것으로 예상된다.
국세청의 이번 세무조사가 김병주 MBK 회장을 겨냥한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MBK는 불시에 홈플러스 기업회생절차를 신청한 후 현재까지 아무런 자구책을 내놓지 않고 있다. 김 회장의 사재 출연이나 대국민 사과 등과 같은 책임 있는 조치도 없다. 그러는 사이 MBK가 홈플러스의 기업회생을 신청하기 직전까지 기업어음(CP) 등을 개인에게 판매한 사실이 드러나면서 모럴 해저드(도덕적 해이) 논란까지 불거지고 있다.
현재 홈플러스의 소매판매 금융채권(금융회사 대출금, 리스 부채 제외)은 약 6000억 원 규모다. 카드 대금 채권을 기초로 발행된 유동화증권(ABSTB·자산유동화 전자단기사채)가 4019억 원, 홈플러스가 발행한 CP 및 전자단기사채가 1880억 원이다. 홈플러스의 낮은 신용등급을 고려할 때 이 가운데 최소 5000억 원 이상의 물량이 대형 기관투자가가 아닌 일반 개인·법인 투자자에게 소매판매된 것으로 추정된다.
홈플러스는 기업회생에 돌입하면서 금융 채무의 상환은 연기하고 상거래 채무는 정상적으로 갚겠다는 입장이다. ABSTB가 금융채권으로 분류되면 여기에 돈을 넣은 개인·법인 투자자들이 피해를 떠안는 구조다. 최근에는 홈플러스가 기업회생을 신청하기 직전인 지난달까지도 ABSTB를 발행한 사실이 드러나기도 했다. 홈플러스 ABSTB 발행 주관사 중 하나인 신영증권은 홈플러스의 소유주인 사모펀드 MBK파트너스에 대해 형사 고발을 검토하고 있다.
김 회장과 국세청 간의 악연도 재조명되고 있다. 김 회장은 2020년 1000억 원 규모의 소득에 대한 역외 탈세 혐의로 2년간 세무조사와 불복 등 공방을 벌이다가 국세청으로부터 420억 원을 추징당한 바 있다. 당시에는 미국 국적인 김 회장 등이 국내 기업에 대한 투자를 미국 세법에 따라 납세하면서 국내 과세가 누락됐다는 논란이 있었다. MBK 관계자는 이번 세무조사에 대해 “2020년에 세무조사를 받았고 5년 지나서 이번에 온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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